ⓒ 피치 바이 매거진

Long-lasting Clothes
오래오래 옷장에 남아

‘친환경’ ‘지속 가능성’이란 단어는 제외해보기로 한다. 그렇다면 어떤 단어로 이 브랜드를 소개할 수 있을까. 제품의 생애주기를 늘리는 브랜드이자 제로웨이스트숍 ‘셉틱탱크’ 손기쁨 대표와 나눈 인터뷰.

박진명
인터뷰이 손기쁨(셉틱탱크 대표)

환경 문제를 논할 때 패션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연구와 통계가 말해주듯 패션 산업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분야 중 하나다. 팬데믹 시대 이후 패션 브랜드는 너나할 것 없이 친환경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속 가능성을 내세운 브랜드가 트렌드처럼 우르르 등장하다 보니 진정성은 조금 부족해보인다. 그래서 섬유를 재배∙추출하고 직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학물질, 끊임없이 발생하는 의류 쓰레기 등은 어떻게 해결한다는 건지. 역시 소비하지 않는 것이 유일하고도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인 것인가. 옷을 만들고 좋아하는 동시에, 환경 문제에 깊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대안을 이야기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도착한 셉틱탱크.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패션에 접근하는 손기쁨 대표는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 메모 1. 요즘 친환경 브랜드가 넘쳐나는데…

‘정화조’라는 뜻의 셉틱탱크를 론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바로 직전에 남성복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CS와 배송까지 담당한 경험이 있는데요. 하루에 포장 패키지가 얼마나 많이 버려지는지를 직접적으로 체감했죠. 소규모 브랜드에서도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더 큰 브랜드에서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올까, 왠지 모를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어요. 합리적인 가격으로 옷을 판매하는 국내 많은 브랜드를 보면 사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환경 문제에 관한 경각심보단 빠른 소비에 집중하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여기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방법으로 옷을 만들고 싶었죠.

6개월 동안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다 작년 10월 매장을 오픈했다고요.
일단 저지르면 뭐든 하겠지 않을까 싶어 온라인으로 시작했어요. 옷 제작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관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죠. 저지르긴 했는데 출발점이 잘못됐단 생각을 했어요. 분명 좋은 취지이고 문제의식을 갖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람들이 왜 소비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하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 그 다음 환경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사람들도 함께 동조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자,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쉽진 않지만.

지속 가능성을 내세운 브랜드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대규모 브랜드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요. 조금 식상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친환경 브랜드라는 말은 되도록 안쓰려고 해요.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고 생산∙제작을 하는 브랜드이지만, 저 역시 여전히 알아가는 단계이고 고객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거든요. 매장을 오픈하면서 제가 직접 사용해보고 좋았던 지속 가능한 생활용품을 함께 들여놓은 것도 그 이유예요. 단번에 혹은 일회성으로 확 불타오르는 브랜드나 매장이 되고 싶진 않아요. 작은 불꽃을 오랫동안 잘 지피고 싶어요.

📝 메모 2. 홍제천이 흐르고 정겨운 인심이 있는 동네

홍제동에는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나요?
매장을 운영해보기로 결심하면서 처음 와봤어요. 원래는 망원동을 염두해두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이미 상권이 많이 형성돼 있어서 마음에 쏙 들지 않는 거예요. 제 기준으로는 ‘인싸’ 동네같은 느낌이었어요.(웃음) 조용한 곳을 찾아 부암동 인근까지 이어지는 홍제천을 걷다가 이 동네를 알게 됐죠. 임대료도 저렴하고 빨간 벽돌로 세운 건물도, 경치도 좋고. 바로 계약해버렸어요.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위치인데, 브랜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나요?
정반대예요. 온라인으로 먼저 판매를 시작하고 아직 자신도 없고 완성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길게 보자는 생각으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어요.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더 많이 공부하고 시스템도 어느정도 구축되고 나면 결국 소비자의 발길을 끌지 않을까란 마음이었는데, 갈 길이 참 머네요.(웃음)

매장 문에 붙여 있는 ‘홍(H.O.N.G) 프로젝트’ 포스터가 눈에 띄었어요. 홍제동 상점들이 의기투합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라고요.
셉틱탱크 첫 손님이 이 프로젝트를 주최한 카페 사장님이에요. 홍제동에 새로운 곳이 생기면 일일이 다니면서 인사를 하는 마당발이더라고요.(웃음) 마음 맞는 상점들이 모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운 좋게 합류하게 됐죠. ‘Hope Our New Ground’를 줄여서 이름을 붙인 이름의 로컬 프로젝트로, 홍제동에 있는 카페, 식료품점, 제로웨이스트숍을 모두 방문하면 예쁘고 지속 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굿즈를 드리고 있어요. 운영자들과 함께 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관계를 쌓아가고 있어요. 그들 덕에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메모 3. 업사이클링 그 이상의 무언가.

셉틱탱크 제품은 어떻게 제작되나요?
매 시즌마다 제품을 출시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퀘스트를 가지고 옷을 만들고 있어요. 퀘스트의 범위는 굉장히 다양해요. 예를 들면, 밀리터리 업사이클링, 멸종위기종이 그려진 프린팅 티셔츠, 다른 브랜드와 협업해 쌓여있던 재고로 만든 스웻 셔츠 등이 있죠. 셉틱탱크의 의류는 모두 5년 동안 무상으로 AS가 가능해요. 옷이 기능을 다해 버려질 때는 무료로 회수를 해서 다시 업사이클링하고요. 순환하는 브랜드라고 볼 수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좋아하는 옷의 기준이 나름대로 있었거든요. 옷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브랜드 마이크로브(Microbe)를 따로 론칭했어요. 이 브랜드는 생분해성 원단과 부자재를 70퍼센트 이상 사용해 제품을 제작해요. 셉틱탱크와 마찬가지로 무료로 폐기해주고요. 무엇보다 옷의 본질적 기능에 집중했는데, 입은 사람이 돋보이도록 편안함을 극대화하고 인위적인 느낌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이에요. 별다른 고민없이 집어들 수 있는 셋업이 대표 제품으로, 실을 제외한 98퍼센트의 재료가 모두 자연에서 왔어요. 리넨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러운 라미(Ramie) 원단을 사용했죠.

마이크로브를 전개하면서 업사이클링 외에 다양한 친환경적인 방법을 모색할 것 같아요. 
예전부터 가죽의 대체재를 찾고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포도씨로 가죽을 만들더라고요. 여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는데 여러 사정으로 그 소재는 수급이 어려웠고 대신 찾은 게 장어 가죽이에요. 장어를 식용으로 팔고 나면 생기는 부산물 중 하나인 껍질로 가죽을 대체해봤어요. 자연 건조한 장어 가죽을 한 장씩 직접 손으로 펴고 각각 낱장 재단 후 다시 이어 붙이는 특수 과정을 통해 완성되죠. 장어 가죽은 얇고 부드럽고 가벼우며, 소가죽에 비해 1.5배 질겨 내구성도 좋아요. 그 위에 환경 테스트를 거친 염료를 뿌려 페인팅했어요. 쉽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오래오래 남을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공부를 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도 크겠어요.
사실 친환경 소재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재고를 없애는 일이에요. 이게 정말 쉽지 않아요. 단가를 맞추려면 대량으로 생산을 하는 게 좋으니까요. 지금까지는 공장에 맡기기도 하고 미싱으로 직접 만들기도 했는데, 펀딩으로 제작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펀딩은 재고를 최소화하고, 메시지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것 같아요.

이 공간과 브랜드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사실 저는 순수 예술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감상하는 것보다 실체화된 무언가가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게 훨씬 큰 성취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 수단이 패션이었고요. 셉틱탱크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관여하는 물건과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단순히 친환경적이라서 어떤 물건의 대체재로 구입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해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해질 것 같아서 구매하는, 그런 제품이었으면 하죠.

📝 메모 4. 역시나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지갑을 열었다. 일본 유명 데님 공장인 쿠로키에서 생산한 내추럴 코튼으로 만든 원턱 팬츠. 손기쁨 대표는 제품을 건네며 헤지고 닳도록 착용하길 바란다고, 20 뒤에는 업사이클링까지 해주겠다고 말했다. 한마디에 장황한 인터뷰의 핵심이 담겼다. 오래오래 누군가의 옷장에 남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소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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