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경

Strange Things in Shindang
기묘한 신당동 이야기

한국의 다양한 매력을 알리는 트래블레이블의 ‘신당동 도보 투어’에 참가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동네 신당동에서 발견한 기묘한 이야기. 

박진명
사진 김윤경
취재 협조 트래블레이블
투어 예약 pbp.co.kr/travel

신당동 투어 코스
서산부인과 - 광희문 - 시구문시장 - 동활인서터 - 무당천&떡볶이타운 - 대장간 거리 - 개미 골목 - 박정희 가옥 - 백학시장 - 중앙시장 - 싸전거리 

서산부인과

"우리가 지금 모인 이곳은 1965년에 건축한 산부인과 건물 앞이에요. 20세기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 건축가의 작품입니다. 이 일대의 운명은 해방 전후로 나뉩니다. 해방 이전에는 죽음을 상징하던 동네였다면, 해방 직후에는 부촌으로 재탄생했죠.”

동대문역사공원역 3번 출구 앞. 모서리 없이 둥글둥글한 곡선이 끊어질 듯 절묘하게 이어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1990년대까지 산부인과였던 이 건물은 현재 디자인 회사의 사옥으로 사용 중이다. 자유로운 곡선의 형태가 인상적인 건물 외관에는 하얀색 페인트를 덧칠한 흔적이 있다. 원래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는데, 건물의 용도가 달라지면서 몇 번의 칠이 더해 졌다고. 도면을 보면 건축물은 남성의 성기와 자궁 안에 있는 태아의 형상을 띄고 있다. 이는 출산과 생명을 상징하는 산부인과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설계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전쟁이 막 끝난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산파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시대에 산부인과가 있는 동네라는 것은 부촌이었음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이 동네는 생명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길 건너 광희문에 있다.

광희문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시구문(屍口門)’이라고 불리던 광희문은 도성 안에서 죽은 사람을 성 밖으로 내보내던 문입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병사들의 시신을 내다 버리는 장면에 등장하기도 했어요.”

숭례문과 흥인지문 사이에 자리한 광희문은 한양도성의 동남쪽을 지키던 문이다. 민중의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문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별칭이 있었다. 옛 청계천의 한 물줄기와 가깝다는 의미의 수구문(水口門)이라 불리기도 하고,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으로 칭하기도 했다. 도성 내에는 시신을 매장할 수 없고, 장례 행렬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은 사소문(四小門) 중 소의문과 광희문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가이드의 설명대로 2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광희문이 등장한다.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이에 항거한 의병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남대문에서 서소문 사이,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가 바로 ‘남대문 전투’. 이는 한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끝나버렸고, 희생된 120여 구의 시체가 광희문에 버려졌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문루는 1975년 문을 남쪽으로 옮기며 복원되었다.

1 조선시대 도성인 서울 성곽에 있는 4개의 작은 성문. 광희문을 비롯해 혜화문, 창의문, 소의문을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2 2018년 방영한 드라마로, 대한제국 의병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구문시장~대장간 거리

“성문 밖에 형성된 마을에는 죽음을 받아 내던 사람들이 살았어요. 누군가는 문밖에 버려진 죽은 자를 떠나 보내야 했고요. 망자가 있는 곳엔 무당이 있기 마련이죠. 신당(神堂)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뜻의 신당동은 갑오개혁 때 발음이 같지만 뜻은 다른 신당(新堂)으로 바꼈어요.”

죽은 자들을 따라 광희문을 통과해 도성 밖으로 나오면 시장이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에 시구문시장이 형성됐다. 그 시절부터 남아 있던 가게라곤 시구문 떡집뿐이다. 살짝 언덕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철학관’ ‘점집’같은 글자가 눈에 들어 왔다. 조선시대 광희문 밖으로 버려진 망자의 죽음을 위로하는 신당이 모여있던 동네라는 말이 실감났다. 유교 사상은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다. 글을 읽을 줄 몰랐던 일반 백성에겐 무속 신앙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신당을 중심으로 빈곤하고 절박한 백성이 모여 살았다.
빈민구휼 정책이 논의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던 동네라고도 알려져 있다. 현재 오거리마트가 들어선 건물 자리는 구휼 기관 활인서의 터로 전하는데, 오늘날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활인서는 전염병이 돌 때마다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했던 기관으로, 의관과 무녀가 이곳에서 환자를 돌봤다. 당시 대추가 구하기 쉽고 값싼 약재였기 때문에 이 주변에 대추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는 딱 한 곳에서만 볼 수 있다. 대추나무포차의 천막을 뚫고 긴 세월을 이겨낸 대추나무를 찾아보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개미 골목’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골목을 지나 대장간 거리로 나왔다. 현재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의 자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군사훈련장이었다. 당시 필요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대장장이들이 모여들어 대장간 거리를 형성한 것.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금방울, 작두, 칼 등 마당들이 사용하는 무구를 제작했다. 이후 중공업의 발달과 쇠퇴 시기를 거치며 지금은 농기구 등을 만들고 있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

“남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신당천을 매립 하고 복개도로를 깔았어요. 이후 이곳엔 떡볶이 타운이 들어섰죠. 신당동의 아이콘 마복림 할머니는 고추장 떡볶이를 만든 최초의 인물이에요. 중국집에서 나눠준 가래떡에 우연히 떨어진 짜장 소스를 함께 먹은 이후, 고추장을 더해 지금 형태의 떡볶이를 만들었다고 해요”

대장간 거리에서 나와 떡볶이 타운에 이르기까지 걸어서 약 10분 남짓. 한때 남산과 대현산에서 흘러와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신당천이었던 도로 위를 걸었다. 위장병에 효능이 좋은 약수가 흐른다 해서 ‘약수천’이라고도 불렸다고 전해진다. 걷는 동안, 가이드는 신당동 떡볶이를 소재로 한 음악 DJ DOC의 ‘허리케인박(신당동 떡볶이)’을 들려줬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찾아간 곳은 찾아간 곳은, 신당동 떡볶이집/(중략) 그녀는 좋아하는 떡볶이를 제쳐두고, 쳐다본 것은 쳐다본 것은/뮤직 박스 안에 디제이라네.” 신당동에서 1970년대 10대들이 떡볶이와 함께 즐긴 것은 떡볶이집에 있던 DJ 부스다. 10대들은 값싸고 맛있는 떡볶이를 먹고 잘생긴 ‘디제이 오빠’를 보러 몰려들었고, 지금의 떡볶이 타운이 탄생했다.

박정희 가옥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 형성된 토막촌을 밀어버리고 일본인의 생활을 지원하는 문화주택 단지를 지었어요. 일본식과 서양식을 혼합한 주택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가옥도 당시 건축됐죠. 도시가 개발되면서 주택 단지는 허물어졌는데, 박정희 가옥은 당시의 주거사를 보여주는 유일한 곳입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이번에는 이어폰에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 흘러나왔다. 문화재청 지정 근대문화유산인 박정희 가옥에 도착했다. 박정희 가족이 1953년부터 1961년까지 살던 곳으로 박정희 별세 후에는 유족들이 살았다. 이 집은 왜 하필 신당동에 있을까.
1920년대 묘지로 빼곡했던 신당동에는 토막촌이 형성됐다. 판자촌과는 다른 개념으로 집 없는 빈민들이 공터에 만들어 사는 움막이나 움집을 이르는 말이다. 당시 이곳은 오물처리장에서 흘러온 악취가 진동하고 공동묘지 가까이에 있어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1933년, 일본인을 위해 문화주택 단지를 조성하고자 5,000명에 이르는 신당동의 토막민을 몰아냈다. 내국민의 고통과 아픔으로 얼룩진 땅 위엔 고급 문화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가옥 내부를 둘러보니, 응접실과 서재, 부엌 등으로 나뉜 공간은 현대식 아파트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장 큰 특징은 별채에 실내 화장실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백학시장 · 중앙시장 · 싸전거리

“해방 이후 피난민들이 이곳에 쌀가게를 열었다고 해요. 쌀집만 700여 곳이었다고 하니 그 명성을 상상할 수 있겠죠. 싸전거리에는 신당동의 100년이 다 담겨 있어요. 신당부터 쌀집, 떡볶이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카페까지. 이제 곧 신당동은 재개발 사업에 들어갑니다. 1시간 30분 동안 돌아본 낡고 소중한 모습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이 동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세요.”

음과 양을 상징하는 빨간색과 흰색 깃발이 펄럭인다. 신당 자리를 알리는 표시다. 신당과 상점이 혼재된 백학시장을 지나자 맞은편에 중앙시장이 보였다. 평일 오후에도 시장 안은 사람과 음식, 물건으로 복잡했다. 서울의 3대 시장 중 하나인 중앙시장은 최근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정겨운 풍경과 요즘 세대의 입맛을 저격한 오래된 맛집을 찾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반건조구이와 조림으로 유명한 맛집 옥경이네 건생선을 끼고 모퉁이를 돌자, 쌀가게가 줄을 이었다고 해 싸전거리라 불리는 길이 나왔다. 해방 이후 쌀가게가 즐비하던 거리에는 중고 주방집기나 가구가게가 들어섰고, 곡식 창고는 카페가 되었다. 1938년 정주영 회장이 생전 처음 창업한 경일상회는 대우상회로 바뀌었다.
신당동 무속투어는 ‘신당동 재개발 소식’과 함께 싸전거리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신당동의 기묘한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기억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아주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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