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미식과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10년간 호주에서 셰프로 일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같아요. 요리하는 사람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만약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된다면, 지속 가능한 미식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으레 제로웨이스트 레스토랑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해 자원을 선순환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는데, 사실 현재 저희는 그런 설비 시스템을 갖추긴 어려워요. 공간의 규모도 작고 주택가 사이에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로웨이스트를 어떻게 실천하는데?’라고 물어보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노력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건 물론이고,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메뉴나 아티스트와의 작업 안에 녹여내려고 해요. 공간이나 음식을 소개할 때 자연스럽게 묻어날 수 있게.
레벨제로에서 주로 활용하는 식자재는 무엇인가요?
자연산 해산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에 양식으로 기른 식자재를 활용하고 있어요. 양식장 중에서도 친환경 인증이나 수질 관리 인증을 받은 곳에서 해산물을 공급하고 있죠. 이외에도 갑각류의 모든 부위를 낭비 없이 활용하거나 유기농 목초지에서 자란 소와 오리, 친환경 바이오플락 양식 기술로 키운 흰다리새우 등을 활용합니다. 흑갱 같은 한국 토종 쌀을 이용한 메뉴도 있어요. 이 땅에서 자라는 토종 식자재를 지키는 일은 요리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죠.
레벨제로에서 만드는 요리를 퓨전 한식이라고 규정해도 될까요?
아마 여느 한정식 식당보다 토종 식자재를 더 많이 사용할 거예요. 그런데 한식보다는 컨템포러리 퀴진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시즌별로 테마가 바뀐다고 들었어요. 이번 여름엔 어떤 주제를 준비하고 있나요?
올여름의 주제는 비예요. 비에 얽힌 각자의 기억과 느낌을 떠올릴 수 있도록 기획했죠. 공간 구석구석에서 여러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숲속 어딘가를 떠올리며 작업한 실내 연못을 설치했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만든 오브제, 산과 들, 바다의 기운을 담은 식기를 준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