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제로의 다이닝 코스 벨

 

ⓒ 레벨제로

A Taste Adventure
오감을 자극하는 맛의 모험

다이닝 쇼룸 레벨제로에서는 버려진 달걀껍데기나 플라스틱, 유리를 업사이클링한 식기를 사용하고, 직접 기른 각종 허브와 못난이 채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제로웨이스트가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대니 한(레벨제로 수석 셰프)

시끌벅적한 대로변을 따라 걷다 서울 용산역 뒷쪽 골목 주택가 사이로 들어섰다. 다이닝 쇼룸 레벨제로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회분홍색 페인트로 칠한 건물 앞에 섰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 가니 신비로운 미식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한 디딤돌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천장을 유리로 덮은 정원, 그 중심에 놓인 테이블. 그리고 실내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을 열자 바 테이블과 오픈 키친이 길게 이어졌다.
다이닝 쇼룸 레벨제로는 레스토랑 안에서 공간을 이동하며 코스 요리를 즐기는 독특한 콘셉트로 미식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자연 소재를 본 따 만든 바이트(bite)를 정원에 숨긴 다음(레벨제로에서는 이 과정을 플레이팅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음식을 직접 채집해 먹을 수 있도록 가위와 바구니를 제공한다. 레벨제로의 다이닝 코스는 마치 하나의 공연처럼 느껴진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자재와 오감을 일깨우는 요리, 손님에게 닿는 기물 각각에는 저마다의 제로웨이스트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레벨제로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레벨제로는 쇼룸 콘셉트의 다이닝 레스토랑이에요. 시즌별로 주제를 정해 메뉴를 구성하고, 타이틀과 어울리는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있어요. 말그대로 패션 브랜드의 쇼룸처럼 시즌에 맞는 미식과 공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죠.

레벨제로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 가장 먼저 제로웨이스트를 떠올렸어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보다는 ‘지상층’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를 살린 이름이에요. 지상층에서 경험하는 특별한 미식. 저희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담은 거죠.

용산역 뒷골목이 핫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다이닝 레스토랑은 처음인 것 같아요. 이 동네에 자리 잡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이닝 레스토랑은 대개 청담이나 종로 쪽에 많이 몰려 있잖아요. 다른 동네에서 이런 성격의 레스토랑을 운영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이 자리를 발견해 이곳에서 오픈하게 됐죠.
 
지속 가능한 미식과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10년간 호주에서 셰프로 일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 같아요. 요리하는 사람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만약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된다면, 지속 가능한 미식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으레 제로웨이스트 레스토랑하면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해 자원을 선순환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는데, 사실 현재 저희는 그런 설비 시스템을 갖추긴 어려워요. 공간의 규모도 작고 주택가 사이에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나는 것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로웨이스트를 어떻게 실천하는데?’라고 물어보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노력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건 물론이고, 제로웨이스트 철학을 메뉴나 아티스트와의 작업 안에 녹여내려고 해요. 공간이나 음식을 소개할 때 자연스럽게 묻어날 수 있게.

레벨제로에서 주로 활용하는 식자재는 무엇인가요?
자연산 해산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에 양식으로 기른 식자재를 활용하고 있어요. 양식장 중에서도 친환경 인증이나 수질 관리 인증을 받은 곳에서 해산물을 공급하고 있죠. 이외에도 갑각류의 모든 부위를 낭비 없이 활용하거나 유기농 목초지에서 자란 소와 오리, 친환경 바이오플락 양식 기술로 키운 흰다리새우 등을 활용합니다. 흑갱 같은 한국 토종 쌀을 이용한 메뉴도 있어요. 이 땅에서 자라는 토종 식자재를 지키는 일은 요리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죠.

레벨제로에서 만드는 요리를 퓨전 한식이라고 규정해도 될까요?
아마 여느 한정식 식당보다 토종 식자재를 더 많이 사용할 거예요. 그런데 한식보다는 컨템포러리 퀴진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시즌별로 테마가 바뀐다고 들었어요. 이번 여름엔 어떤 주제를 준비하고 있나요?
올여름의 주제는 비예요. 비에 얽힌 각자의 기억과 느낌을 떠올릴 수 있도록 기획했죠. 공간 구석구석에서 여러 작가와 협업한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숲속 어딘가를 떠올리며 작업한 실내 연못을 설치했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만든 오브제, 산과 들, 바다의 기운을 담은 식기를 준비했어요.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됐나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커피 관련 일을 하다가 비자 만료일이 다가올 쯤에 요리를 시작하게 됐는데요. 어느 날 문득 식자재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일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호주 레스토랑의 주방을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레스토랑 구인 광고를 보고 그릇을 닦는 포지션에 지원을 했는데, 헤드 셰프가 요리사로 지원한 줄로 알고 요리 경력이 있냐고 회신을 했더라고요. 처음엔 경력이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주방에 너무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에 요리할 줄 안다고 큰소리를 쳤어요(웃음). 그날 바로 조리 도구를 300만 원 어치 구매했고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10년 동안 호주에 눌러 살게 된 거예요.

호주 식문화 중 한국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있다면요?
호주에서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됐어요. 대부분의 카페나 레스토랑이 친환경 마인드로 운영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제가 호주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몸 담았던 파인 레스토랑 아티카(Attica)에서는 현지 식자재를 활용해 가장 호주다운 요리를 선보이고 있어요. 아티카는 자연의 지역주의를 중요시하며, 호주 원주민이 주로 먹던 식자재를 활용해 메뉴를 만들어요. 레스토랑 한 편에 마련한 정원에서 허브를 따고, 바닷가에서 해초나 바다시금치같은 것을 캐는 등 과거 원주민의 수렵과 채집 활동을 재현하면서 말이죠. 그곳에서 제 요리 철학을 스토리텔링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요즘 한국에서도 지속 가능한 미식을 지향하는 공간이 하나둘 생기고 있지만 아직 멀었죠.
아티카에서 만든 요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이타카 정원에서 키우는 호주의 토종 식자재를 이용해 쌈 채소 메뉴를 만든 적이 있어요. 맛은 익숙한데 채소 잎을 싸먹는 행위는 한국적이다 보니, 현지인 사이에서 반응이 좋더라고요. 이처럼 아티카에서는 개인적 경험을 요리를 통해 전달하는 동시에 식자재 본연의 맛을 살리는 방법을 배웠어요. 현재 레벨제로를 운영하면서 그때의 기억을 많이 떠올리는 편이에요.

레벨제로에 실내 정원을 만든 것도 그 경험의 일부인 건가요?
항상 레스토랑을 오픈하면 작게라도 정원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간단한 식자재를 직접 재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손님이 미식 경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거든요. 파인 다이닝은 의자에 앉아 주어진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맛이 있어야 겠지만, 사실 저는 맛도 호불호가 갈리는 걸 선호해요. 레벨제로 다이닝에 참여한 10명 모두가 맛에 만족했다고 하면, 그건 실패한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면 대중적이라는 거잖아요.

모두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다이닝 코스가 짧게는 2시간, 길게는 3시간 동안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음식 말고 그 순간만큼은 가장 특별한 맛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일상에서는 맛을 통해 사유한다거나 어떠한 기억을 떠올릴 일이 별로 없잖아요. 레벨제로에서 그런 경험을 하길 바라요.
맛에 대한 영감을 어떻게 얻는지 궁금해요.
외삼촌이 산 아래 집을 짓고 살고 있어요. 덕분에 시골에 가면 디톡스를 제대로 하곤 하죠. 제가 나물류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먹을 때는 아무 생각없이 맛있게 먹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같아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고요.

마지막으로, 레벨제로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지속 가능 미식에는 제로웨이스트뿐만 아니라 훨씬 다양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일단 이 지역이 재개발되기 전까지는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식자재로 창의적인 요리에 도전하며 특별한 다이닝 경험을 제공하고 싶고요. 이후 규모가 큰 곳으로 매장을 옮기면,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춘 완전한 제로웨이스트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어요.
같은 요리사라도 저마다의 역할이 있잖아요. 저는 평범하지 않은 순간을 남기는 맛을 요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레벨제로를 통해 지루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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