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 자리한 깨 로스터리 옥희방앗간

 

ⓒ 박나희

Local Flavor in Wonju
원주 로컬 맛집 리스트 6

무색무취의 도시라는 편견 너머, 지역의 산과 들에서 자란 식자재에 대한 애정이 깃든 원주의 맛을 찾아서.

표영소
사진 박나희

깨 로스터리 옥희방앗간

요즘 ‘방앗간’이라는 명칭을 달고 문을 여는 매장 중에 진짜 방앗간은 몇 곳이나 될까? 옛 방앗간을 개조했거나 방앗간의 정겨운 이미지에 기댄 카페와 음식점 틈에서 옥희방앗간은 특별하다. 기름이 나오길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커피 한 잔씩 나눠주던 동네 사랑방. 원주 행구동, 치악산 자락이 한눈에 담기는 대로변의 한 건물에서 사라져가는 옛 방안간 풍경이 재현된다.
지금의 이름으로 문을 연 건 3년 전이지만, 시작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지연 대표의 할아버지가 1970년대부터 35년간 쌀 방앗간을 하셨고 어머니는 기름 방앗간을 운영하셨으니, 옥희방앗간은 3대째 잇고 있는 가업인 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힘들었던 시기, 문 대표는 어머니의 방앗간 일을 도우며 위안을 얻었다. 오랜 세월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준 방앗간에 대한 애정과 로컬 식자재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여행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쌓은 취재 경험을 온전히 쏟아부은 결과물이 깨 로스터리 겸 카페인 옥희방앗간이다.
제조 방법에 따라 맛과 종류, 활용법이 세분화되는 올리브유에서 힌트를 얻어 깨에도 로스팅 개념을 도입했고, 들깨를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직접 개발했다. 문 대표가 브랜드와 비즈니스 전반을 책임진다면, 기름 생산은 오롯이 그녀의 어머니 ‘옥희’의 손에 달려 있다. 딸보다 먼저 기름 방앗간을 운영해온 어머니만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분야다. 원주를 포함한 강원도산 들깨와 국내산 참깨를 일일이 손질하고 두 단계로 나눠 로스팅한 뒤 착유한 기름을 병에 나눠 담는다.
방앗간 안쪽에 마련된 착유장(식품의 원료 생산부터 최종 판매 단계까지 위해 요소를 평가·확인하는 HACCP 인증을 받았다.)에서 황금빛의 향긋한 들기름이 만들어지는 동안 카페에선 들깻가루로 고소함을 더한 크림들깨라테나 통들깨, 들기름, 국산 벌집꿀에 깻잎 장식까지 곁들인 들깨벌꿀아이스크림을 즐기고, 간간히 기름을 사가는 이들도 있다. 방앗간에 익숙한 세대가 주 고객인 덕분에 젊은 층과 어르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흐뭇한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올 여름쯤에는 확장 공사를 거쳐 1층은 쇼룸 겸 체험 공간으로 바뀌고 카페는 2층에 자리 잡을 예정이다. 로컬에서 '소로, 여행자의 집’을 운영하는 박은혜 셰프와 협업해 완성한 들기름 멀티드레싱 ‘깻찹’도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강원도 들깨를 테마로 원주 여행의 앵커 스토어를 꿈꾸는 방앗간의 새로운 시즌이 기대된다.
Interview
(Q1) 행구동은 어떤 동네? 살구나무와 복숭아나무, 배나무 등 과수가 많던 지역이에요. 그래서 동네 이름에도 살구나무 ‘행(杏)’이 들어가고요. 예전엔 ‘영랑마을’로 불리던 곳이라, 할아버지 방앗간 이름도 ‘영랑방앗간’이었어요.
(Q2)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방앗간이 옥희방앗간 건물 바로 옆에 있었어요. 2007년에 문을 닫으실 때까지 이 동네에서 놀던 추억이 많죠.
(Q3)어린 시절을 보낸 원주와 다시 돌아온 원주는 어떻게 다른지 어릴 때는 어디를 가나 보이는 치악산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벗어나야 할 울타리 같았달까요. 바깥 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돌아온 지금은 그 품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져요. 예전에 미처 몰랐던 아름다움도 발견하게 되고요. 현지의 삶도 한층 깊숙이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소로, 여행자의 집

아무런 정보 없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소로, 여행자의 집을 발견하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 일산동 원주 세브란스 기독병원 인근, 오래된 주택가의 비좁은 모퉁이에 자리한 빛 바랜 붉은 벽돌 건물. 유리문에 ‘소로’라는 상호가 붙어 있긴 하지만, 그와 나란히 있는 파란색 글자 ‘성화방앗간’에 더 시선이 간다. 1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로컬 식당은 웬만해선 요란 떠는 법이 없는 이 도시와 닮았다.
소로, 여행자의 집은 박은혜 셰프의 세 번째 식당이다. ‘살살’이라는 뜻의 옛말에서 따온 첫 식당 소로소로는 매일 바뀌는 가정식 메뉴 한 가지만 내는 곳이었고 주로 인근의 대학교 학생들이 찾았다. 두 번째 식당은 비스트로 소로라는 이름의 프랑스 식당이었다. 2020년 문을 연 소로, 여행자의 집은 이름처럼 여행지에서 직접 경험한 요리와 식자재에 영감을 받은 음식을 선보인다. 제철 식자재와 로컬 먹거리에도 관심이 많아 로컬 브랜드와 협업해 신메뉴를 선보이거나 팝업 심야식당을 운영하기도 한다.
출입문과 연결된 아담한 카운터 겸 숍을 지나 식사 장소로 들어서면 겨자색 타일을 두른 오픈 키친이 반긴다. 요리하는 셰프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도 될 만큼 가까운 거리에 테이블 서너 개가 자리하고, 각종 식자재와 요리책이 놓인 선반, 여행에 관한 글과 사진이 벽면에 가득하다.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한 달씩 긴 여행을 떠나곤 했을 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박은혜 셰프의 마지막 여행지는 코로나19 전에 다녀온 이탈리아. 그런 까닭에 현재는 토마토 바질 피자, 해산물 먹물밥, 엔초비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요리를 기반으로 한 메뉴가 주를 이루지만, 셰프가 태국 여행을 다녀 오면 태국 요리가,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 일본 요리가 메뉴에 등장할 것이다. 소로, 여행자의 집에서 원주 여행을 이어가고 싶다면, 식당을 나서기 전 카운터 벽면에 붙어 있는 여행자 지도를 살펴보자. 박은혜 셰프가 직접 그린 원주 지도로, 그녀가 추천하는 카페와 음식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Interview
(Q1) 일산동은 어떤 동네?
원주의 구도심이에요. 전통시장(미로예술시장)도 있고요.
(Q2)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 첫 번째 식당이 이곳에 있었어요. 두 번째 식당은 다른 동네에 열었는데, 아무래도 일산동이 저와 맞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이 자리에 30년 된 방앗간이 있었어요. 우연히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주인 할아버지를 졸랐어요. 방앗간은 그만하시고 저에게 임대해달라고. 5개월 동안 기다려서 결국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어요.
(Q3) 소로, 여행자의 집을 찾는 사람은? 현지인과 외지인이 반반이에요. 주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오가는 길에 들르는 경우도 꽤 있고요.

 

로컬그로서란트 능선

그로서란트(grocerant)는 그로서리와 레스토랑의 합성어다. 장보기와 식사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식문화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 1990년 후반 처음 등장했다. 작년 12월 원주 원도심의 오래된 동네 봉산동에도 그로서란트가 생겼다. 로컬그로서란트 능선은 이름에 충실하게 원주 농산물을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이자, 강원도 지역에서 탄생한 FnB 상품을 소개하는 상점이다. 건물 외관에 그대로 달아 놓은 ‘진안하이퍼마트’라는 옛 간판이 이보다 더 절묘할 수 있나 싶게 잘 어울린다.
원주 토박이인 유선후 푸드 디렉터와 원주살이 10년 차인 황인정 콘텐츠 디렉터는 브랜드 이름을 지으면서 치악산을 표현할 수 있는 ‘능선’이라는 단어를 골랐다. 짙은 초록색과 목재 가구가 어우러진 내부 인테리어나 한쪽 벽면에서 반복 상영 중인 브랜드 영상 속 원주 남서쪽 현계산 기슭에 자리한 절터 거돈사지의 풍경에서도 능선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고구마크림라테, 감자크림파이는 원주에서 자란 농산물로 만든 카페의 대표 메뉴. 한구석에는 강릉의 감자유원지, 양구의 까미노사이더리, 춘천의 감자아일랜드, 원주의 모월양조장 등 강원도 지역 브랜드에서 생산한 식음료가 진열돼 있다. 복숭아, 배 등 로컬 식자재를 활용한 자체 F&B 상품을 준비 중이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는 클래스와 워크숍도 진행할 계획이다.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면 통유리창 너머로 낡은 기와지붕을 얹은 ‘남 미용실’이 마주 보인다. 시그너처 메뉴와 지역 제철 식자재로 만드는 이달의 디저트를 맛보는 동안 미용실은 문을 연 지 얼마나 됐을까, 혹시 남자 전용 미용실은 아닐까, 이런저런 상상이 꼬리를 문다. 봉산(鳳山)과 원주천 사이에 자리한 봉산동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 시 외곽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활기를 잃고 현재는 고령 인구와 노후 주택 비율이 높은 동네로 꼽힌다. 주변에 카페가 거의 없다 보니 로컬그로서란트 능선을 찾는 이들 중에는 동네 주민도 꽤 있는 편. 이미 익숙한 지역 농산물을 색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현지인이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이퍼마트에서 로컬그로서란트로 바뀌었지만, ‘동네(로컬)의 작은 마트’라는 설명은 예나 지금이나 이 공간에 딱 어울리는 수식어일 듯하다.
Interview
(Q1) 봉산동은 어떤 동네?
한때 우물시장으로 유명하던 곳이에요. 마을에 있는 우물을 중심으로 장이 들어서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죠.
(Q2)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 그로서리 콘셉트의 카페를 열 생각으로 자리를 알아 보다가 50년 동안 마트가 있었던 이 건물을 발견했어요.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이 모이던 공간이었을 테니 저희 의도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Q3) 원주의 매력 도시와 시골의 느낌이 적당히 공존해서 좋아요. 자연이 가까이에 있고 생활에도 큰 불편함이 없거든요.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도시인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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