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산맥의 사진

 

© 캉리사르 원정대

Why climb the Himalayas in alpine style
등반가 안치영, 히말라야를 알파인 등반으로 오르는 이유

안치영은 한국의 손꼽히는 알파인 고산 등반가다. 가셔브룸 5봉, 암푸1봉 등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를 세계 최초 등정했고, 신루트를 개척했다. 2024년 4월 네팔 히말라야의 미등봉인 캉리사르(6,811m)에 도전한 그가 말하는 알파인 등반에 대하여. 

*안치영
사진 캉리사르 원정대

히말라야의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등반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등반가는 편하고 식상한 등반을 계속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좀 더 새롭고 난해하며 어려운 곳을 찾아 오르려고 한다. 산의 난도와 환경이 어려워질수록 등반의 육체적·정신적 고통도 함께 올라간다. ‘그런 곳에서 무엇을 찾고 느끼고 싶어 어려운 벽을 오르고 산을 찾는 것일까’하는 생각은 내 자신에게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질문이다. 
좀 더 빠르게, 조금 더 어렵게, 또는 더 높은 곳을 대상으로 도전하고 좌절과 고통을 이겨내는 등반 과정은 더 큰 성취감이나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과 같지 않을까. 쳐다보기만 해도 살벌함과 오싹함이 느껴지는 거벽은 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등반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미지의 산을 오르고 무사히 내려오는 과정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등반가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다. 물론 그것이 목숨을 걸고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1,000미터가 넘는 고요한 암벽에 로프 한 줄로 매달려 있는 나와 동료는 육체와 정신적 능력만으로 순수한 산을 대할 수 있다. 환경과 날씨에 순응하며 적은 양의 음식으로 며칠씩 끼니를 때우며 정상에 오른 후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것은 간절한 바람이고 애원이다. 등반가는 불가능해 보이는 곳을 ‘정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는가 하면, 동시에 저 벽을 오르면 또 얼마나 힘든 일을 겪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생긴다.
산이 멋있고 험할수록 작은 가능성을 찾아 좀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렇게 며칠 또는 몇 달을 생각하고 관찰하다가 등반 가능성을 발견하면 그때부터 오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긴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 산은 누군가를 기다리 듯 외롭게 솟아 있고 인간의 손길이 처음 닿는 그곳에서 루트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알파인 등반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고 느껴지는 것 같다. 쉽게 오르지 못한 산일수록 등반은 더 빛을 발하고 강한 이끌림으로 산을 오르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그런 산은 처음부터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복잡한 형태의 빙하나 걷기 힘든 긴  *모레인(moraine) 지대로 가로막혀 있다. 모레인을 지나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면 추위를 버터야 하고 숨 쉬기 어려운 지대로 들어선다. 눈과 바위가 섞여 있는 암벽에 낙석과 스노우 샤워가 쏟아지거나, 벽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이 돌을 떨어트리고 체온을 빼앗아 가고,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고 의지를 꺾어놓는다.

* 빙하에 의해 운반되어 퇴적된 돌, 모래, 흙이 뒤섞여 있는 지대.
 
한낮에는 태양 빛이 주위의 눈에 반사되어 복사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온이 올라가 옷이나 장갑 등이 땀과 눈에 젖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오후 4시쯤 넘어가면 기온이 급감하면서 젖었던 의류나 장갑이 얼어버린다. 딱딱하게 굳은 장갑을 가슴에 품고 새 장갑으로 조심하게 갈아 껴야 자신의 손가락을 잘 보존할 수 있다. 
비탈면에 설치한 2인용의 작은 텐트는 체온을 유지시켜 주고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고마운 안식처가 된다. 텐트 바닥면이 울퉁불퉁 고르지 못해서 앉거나 눕기도 불편하지만 텐트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으로도 생존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눈이 내리면 밤새 눈을 치우고 눈사태 지대를 살펴야 한다. 이런 등반의 과정은 어렵고 힘들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산과 마주하게 된다. 당연하다는 듯 여기에 순응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산과 잘 동화될 수 있는 길이다.
히말라야의 산은 고도가 높고 접근이 쉽지 않다. 이런 오지의 높은 산을 어떻게 오를 것인가는 등반가의 등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등반에는 대상에 따라 여러 가지 오르는 방식이 있다. 대표적으로 많은 인원이 팀을 이루고 오르는 ‘극지법’과 최소한의 인원과 장비로 단 한 번의 시도로 오르는 ‘알파인 등반’이다. 히말라야의 고산에서 알파인 등반을 추구하는 한국인 등반가는 그리 많지 않다. 알파인 등반은 인원을 최소화해 2-3명으로 팀을 구성하고, 그 만큼 적은 비용과 시간 그리고 최소한의 장비로 산을 오른다. 등반 가이드나 세르파의 도움을 받거나 고정 로프를 설치하지 않는다. 등반에 필요한 모든 일이 팀원의 몫이다. 체력과 정신적으로 힘들고 위험도 많이 따른다. 
알파인 등반은 성공 확률이 적고 리스크가 크다. 베이스 캠프에서 한 번 출발해 오르기 시작하면,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중간에 등반을 포기하거나 내려온다면 다시 등반하기 쉽지 않다. 날씨가 안 좋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은 데도 포기하기 쉽지 않아서 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등반 과정에 뒤따르는 위험은 등반가의 몫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오르는 것이 산악인이다.  
알파인 등반의 묘미는 그 과정에 있다. 운이 좋으면 빙하 위의 평평한 얼음에 텐트를 치지만, 바위 테라스에 걸터앉아 잠을 자야 할 수도 있다. 음식은 등반 일정의 3분의 2만 가져간다. 무게도 줄여야 하고 고소에서는 배가 고파도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없다. 동결 건조한 쌀에 국을 끓여 먹거나 스프나 차를 마시는 정도가 최상이다. 점심은 초콜릿과 사탕, 양갱 같은 것으로 해결한다. 신경을 곧추세워 빙하의 *크래바스를 피해 통과하고, 거대한 커니스를 등반하거나 빙벽을 오르고, 낙석이 떨어지는 암석지대의 벽을 어렵게 올라서면 긴 능선 너머로 정상의 머리끝이 살짝 보이곤 한다.

빙하의 표면에 깊게 갈라진 틈.
해발 7,000미터에 달하는 산을 한참 오르다 보면, 내려가야 하는 길을 더 걱정할 때가 많다. 오를 때에는 체력도 관리하고 안전을 위해  *확보물도 많이 설치한다. 하산할 땐 체력이 거의 바닥나고 판단능력도 떨어져서 실수할 확률이 높다. 1,000미터가 넘는 벽을 하강하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장비 사용을 최대한 아끼는데, 그러다 보면 확보 *앵커가 위태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눈 속에 60센티미터가량 되는  *스노 바 하나만 설치하고 매달려 하강하거나 얼음에 구멍을 뚫어 로프를 통과시킨 후 매달려 하강을 해야 한다. 그래서 등반은 내려올 때 더 위험하다, 

* 등반자가 추락할 때를 대비해 암벽에 설치하는 장비. 피톤, 너트, 캠 등이 이에 해당한다. 
* 로프를 매달 수 있도록 암벽이나 빙벽에 고정하는 장치.
*  빙벽이나 설산에서 사용하는 앵커의 일종.
히말라야의 산은 고도가 높고 접근이 어려워서 많은 등반대가 극지법을 많이 선호한다. 산 아래에 접근성이 좋은 자리를 찾아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점진적으로 여러 개의 캠프를 설치하며 올라가는 방식이다. 캠프와 캠프 사이의 루트에는 고정 로프를 설치하고 그 로프를 이용해 세르파와 등반가가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면서 식량이나 장비를 보충할 수 있다. 물론 고정 로프를 설치할 때에도 세르파가 도와준다. 등반 대원도 함께 짐을 나르고 어려운 곳은 직접 나서기도 하지만 등반에 필요한 많은 작업을 가이드와 세르파의 도움으로 진행한다.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된 등반 방식이다.
극지법 같은 방식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순수한 도전 정신과 산을 영광스럽게 정복했다는 말에는 부합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모험이나 탐험 그리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도전은 언제나 성공과 그 과정에서 오는 불확실성,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한 위험이 도사린다. 이 모든 것을 잘 풀어 나갈 때, 등반의 순수한 도전이 성립되는 건 아닐까. 이런 면에서 알파인 등반은 극지법으로 산을 오르는 방식보다 좀 더 정당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초보자를 데려간다면 고정 로프를 설치해 오르는 것도 틀린 게 아니다. 
등반가는 등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던 일을 멈추고 돈을 모으고 몇 년의 시간 동안 훈련하며 준비한다. 산에서의 단 한 순간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편이다. 산을 어떻게 오르던 방식은 다를 수 있고 사람마다 추구하는 목표도 다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등반의 최종 목표는 출발했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몸과 얼굴은 새까맣게 변하고 수척해진 몸으로 옷이 헐렁하지만 안전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것. 그게 가장 멋진 등반의 성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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