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칸트

Finding German Flavors in Seoul
서울에서 만나는 독일 식당 추천 5

리슬링 와인부터 소시지까지, 디자인 스튜디오 피칸트와 함께 독일의 맛을 찾아 떠나는 서울 여행.

글 ∙ 그림 *피칸트
* 디자이너 송민선과 최중원, 두 사람이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인쇄물과 애니메이션, 모션 그래픽 작업부터 브랜딩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would_it_be_okay를 통해 일상을 담은 네 컷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피칸트(Pikant)는 독일어로 ‘매콤하고 톡 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독일은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는 아니다. 독일어 시험을 준비하며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특히 이탈리아, 중국, 스페인 같은 미식의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독일 음식 어때?” 하고 물으면 모두가 불평할 정도였다. 그런데 4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독일에서 먹던 음식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섬세하고 화려한 맛은 부족하지만 어쩐지 묘하게 중독성 있는 투박함. 독일에서는 꿈도 못 꾸던 회덮밥과 순대국과 청국장 백반을 즐겁게 먹다가도 문득 퍼석한 호밀빵이며 콩이 잔뜩 들어간 수프가 생각나는 것이다. 못 참겠다 싶을 때마다 곳곳을 헤매며 독일의 맛을 찾아 다닌 지 3년째. 그간 발견한 ‘서울 속 독일’ 5곳을 소개한다.
 

그룬트

독일에 살 땐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어김없이 와인 코너에 들르곤 했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리슬링(riesling, 독일 라인강이 원산지인 포도 품종) 와인이 가득했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디자이너들이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다름 아닌 라벨 디자인이다. 리슬링 와인 중에는 라벨이 예쁜 것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비싸지 않고 상큼한 맛이 마음에 들어 우리는 자연스럽게 리슬링을 즐겨 마시게 되었다. 평소에는 마트에서 파는 5유로짜리 리슬링, 뭔가 구실이 있을 때는 큰 마음 먹고 전문 와인숍에서 산, 특별히 예쁜 라벨이 붙은 20유로짜리 리슬링. 한국에 돌아오니 내추럴 와인 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었다. 비싼 가격과 생소한 와인 리스트가 버겁게 느껴져 약속을 잡을 때도 와인 바에는 잘 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성수동에서 리슬링 전문점인 그룬트를 만났다. 이곳에서 파는 리슬링은 우리가 독일에서 마시던 리슬링보다 비싸지만, 그만큼 맛도 향도 좋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독일에 있는 동안 알았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좋은 리슬링을 열심히 찾아 마셨을 것이다. 그러면 지갑은 좀 더 얇아지고 배는 좀 더 무거워졌겠지. 아쉬움과 안도가 교차한다.

[그룬트]
리슬링을 중심으로 독일 와인을 소개하는 와인바. 독일에서 10년 넘게 산 사장님의 친절히 설명과 함께라면 와인 초보자도 걱정 없다. 성수동에 위치해 있다.

더베이커스테이블

우리가 독일에 있는 동안 놀러 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슈바인스학세(Schweinshaxe)를 먹고 싶어 했다. 학센은 맛있는 음식이지만, 심지어 본고장인 바이에른 지역에서도 즐겨 먹는 요리는 아니다. 한국인의 학센 사랑(?)을 전해 들은 독일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요리를 알려주었다. 빵, 치즈, 파스타 그리고 독일식 수프. 어릴 적 베를린의 슈프레(Spree)강에서 멱을 감고 할머니의 비밀 레시피로 만든 푸짐하고 따끈한 렌틸콩 수프를 후후 불어 먹었던, 그런 추억이 우리에게 있을 리 없지만 마치 그랬던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독일 가정식 수프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더베이커스테이블은 베를린이 떠오르는 곳이다. 테이블이 빼곡히 들어찬 내부, 손님들은 바싹 붙어 앉아 친목을 다져야 한다. 커리부어스트, 슈니첼, 파니니 등 저마다 주문한 음식을 먹는 이들 사이에서 우리는 렌틸 수프나 콩 수프를 주문한다. 따뜻한 고기 육수에 건더기가 풍성하게 들어 있는 이 소박한 수프는 베를린 여행 중에 굳이 찾아 먹어야 할 음식은 아닐지도 모른다. 여행에서는 매끼가 소중하니까. 하지만 우리에겐 독일이 여행지가 아니었고, 덕분에 가정식 수프는 독일을 추억할 수 있는 음식으로 남았다. 더베이커스테이블의 수프를 한 숟가락 떠 먹을 때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우리의 정 많은 독일 할머니를 떠올리곤 한다.

[더베이커스테이블]
독일인 셰프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겸 레스토랑. 독일식 식사 빵과 디저트부터 수프, 샐러드, 샌드위치 등의 브런치 메뉴, 슈니첼(Schnitzel)과 브라트부어스트 (Bratwurst) 같은 든든한 저녁 메뉴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갖췄다. 한남동과 삼청동에 매장이 있다.

립하버서울

이 독일인들은 어쩌다 한국에 와서 카페를 하고 있는 것일까? 독일에 살던 우리를 보며 독일인들도 비슷한 궁금증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낮에도 밤에도 낮은 조도를 유지하는 카페 립하버 (Liebhaber, 독일어로 연인을 뜻한다.)에 앉아 있으면 심심찮게 독일어가 들려온다. 일하는 사람들끼리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종종 독일에서 온 손님들이 대화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운 채 하나도 못 알아들은 듯한 표정으로 날로 퇴보하는 우리의 독일어 듣기 실력을 한탄한다. 립하버에는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 대신 드리퍼와 서버가 카운터 한편에 가득하다. 드립 커피를 내리기 위해 필요한 종이 필터를 처음 발명한 사람이 독일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독일어 교재에서 배웠다. 진지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독일인 사장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독일식 크림 치즈인 크바르크로 만든 케이크, 동네 플리마켓에서 따로따로 구입한 듯 서로 다른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밤이 되면 갑자기 범상치 않은 빛으로 바뀌는 조명 아래서 둥둥거리는 전자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맥주까지. 립하버서울은 독일을 대흥동 골목에 옮겨놓는 데 성공했다. 언젠가는 이들에게 독일어로 말을 걸어볼 생각이다. 독일어를 완전히 까먹기 전에.

[립하버서울]
독일인들이 독일식으로 운영하는 대흥동의 카페. 드립 커피, 다양한 맛의 크바르크(Quark, 독일식 생치즈)와 크바르크 케이크를 판다. 펍으로 변신하는 저녁에는 간단히 맥주 한 잔 마시기에 좋다.

395빵집

독일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어느 집에서든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빵집이 있었다. 새벽 6시면 이미 진열장에 가득 들어찬 빵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우리는 종종 일어나자마자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눈을 비비며 투박하지만 맛있는 빵을 사와서 아침밥 대신 ‘아침빵’을 먹었다. 겉에 곡물과 씨앗이 붙은 묵직하고 거친 빵은 버터를 살짝 바르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고, 동그란 브뢰첸(Brötchen)은 반으로 갈라 치즈나 햄을 끼우면 든든한 한 끼로 충분하다. 가볍게 허기를 달래고 싶을 땐 반질거리는 표면을 가진 브레첼에 골파를 쫑쫑 썰어 넣은 크림치즈를 발라 먹으면 된다. 한국의 아침 빵은 독일과는 사뭇 다르다. 동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파는 것은 달고 푹신해 영 터프한 맛이 없고, 독일식 빵을 파는 빵집은 어딘가 너무 힙해서 편하게 앉아서 즐기기가 부담스럽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395빵집은 차분한 공간에 박마이스터린(Backmeisterin, 독일어로 여성 제빵 장인을 가리키는 말)의 구수한 독일 빵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카이저젬멜이나 호밀빵 사이에 햄과 치즈, 납작하게 썬 채소가 촘촘히 들어간 야무진 즉석 샌드위치는 정말 독일에서 먹던 그 맛이다. 고소한 호두와 달콤한 살구가 든 호밀빵은 야금야금 뜯어먹기에 좋다. 무엇보다 395빵집은 “우리는 독일 빵을 파는 곳이야!”라고 요란 떨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독일 빵을 파는 곳이라 마음에 든다. 독일에 있는 독일 빵집처럼 말이다.

[395빵집]
합정에 위치한 독일 빵 전문 베이커리 겸 카페. 뮌헨에서 제빵을 배운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으로, 통밀빵, 호밀빵 등 담백한 식사용 빵을 판다. 특히 브레첼(Brezel)과 카이저젬멜 (Kaisersemmel) 등 남부 독일의 빵은 꼭 맛보자.

세스크멘슬

어떤 감자 그리고 어떤 소시지(정확히는 가공육)를 살지 결정하느라 한참을 서성이곤 했다. 그러다 이내 몇 가지 맥주에 정착했고, 요리에 따라 적절한 종류의 감자(놀랍게도 독일 마트에서는 식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감자를 판다)를 골랐다. 제일 어려운 상대는 햄과 소시지로 가득 찬 진열대였다. 가공육은 다양한 색상과 형태만큼이나 풍미와 향, 식감이 달랐고, 오늘의 안주를 고르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어디서나 잠봉뵈르를 판다. 하몽도, 프로슈토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독일식 가공육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세스크멘슬에 처음 방문했을 때 카슬러(Kassler)며 레버캐제(Leberkäse), 크라카우어 (Krakauer), 슁켄(Schinken) 같은 이름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쇼케이스 안에 덩어리째로 도열해 있는 다양한 소시지와 햄을 보고 있자면, 마치 독일 마트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페인의 여름 소시지 살치촌(Salchichón)이나 바스크 지방의 전통 소시지 치스토라(Txistorra) 등 이웃 나라의 가공육은 물론, 훈제연어와 올리브 절임까지 판매해 현장감을 더한다. 얇게 저민 가공육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바로 이 맛이었지!’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세스크멘슬]
성수동의 유럽식 육가공 전문점. 수프나 샌드위치로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해결해도 좋고, 맥주에 따뜻한 요리를 먹거나 와인에 얇게 자른 콜드 컷을 곁들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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