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빙키차동의 다이파이동

Hong Kong Eating Guide
다이파이동부터 미쉐린까지, 홍콩 맛집 가이드

홍콩의 미식은 현지 문화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이파이동부터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미쉐린의 별을 획득한 모던 프렌치 레스토랑까지, 홍콩 여행 전 필수로 살펴봐야 할 맛집이 모두 여기에 있다. 

빙키차동
Bing Kee Cha Dong

성실함이 빚은 가장 보통의 미식
명품 쇼핑몰과 백화점, 부티크가 즐비한 코즈웨이 베이(Causeway Bay)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만 벗어나면 로컬의 삶이 요동치는 타이항(Tai Hang)에 닿는다. 홍콩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한산한 거리에는 로컬 카페, 디저트 가게, 브루잉 펍 등 현지 특유의 빈티지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상점이 모여 있다. 자리한 동네다. 특히나 이른 아침 타이항의 골목은 조용하게 활기차다. 그중 파인애플 번, 토스트와 밀크티, 죽, 우육면 등 저마다의 고소한 냄새로 사람들의 분주한 발길을 붙잡는 차찬텡(Cha Chaan Teng)과 다이파이동(Dai Pai Dong)이 눈에 띈다. 아침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로컬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차찬텡은 차와 음식을 파는 실내 음식점을, 다이파이동은 야외 음식 가판대를 뜻한다. 이 두 공간은 홍콩 미식 체험의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데, 안타깝게도 다이파이동은 최근 몇 년간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비싼 자릿세나 위생 문제로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사실 홍콩의 식문화는 노천 식당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다이파이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50~70년대에는 1달러만 있으면 한 끼 식사가 가능했기에 서민의 배를 채우는 데 그만한 공간이 없었다. 대신 요즘엔 다이파이동 콘셉트로 한 현대적 감성의 실내 다이닝 공간이 하나둘 늘고 있다.
타이항 골목에 자리한 빙키차동은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다이파이동으로, 같은 자리에서 3대째 운영 중이다. 매주 월요일의 휴무일,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아주 더운 날을 제외하고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주민들의 아침·점심 식사를 책임지고 있다. 대표 메뉴는 돼지고기나 닭고기, 햄, 달걀프라이 등 토핑을 얹은 라면과 연유, 땅콩잼을 바른 홍콩식 프렌치 토스트.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각자의 치열한 일상에 뛰어들기 전 알록달록한 접이식 의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즐긴다. 그 모습이 정겨워 보일 수밖에 없다. 더운 날씨에 높은 불길 위에서 열정적으로 웍을 돌리는 주방 안 요리사의 모습은 또 어떤가. 홍콩의 미식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서민들의 성실함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프웨이 커피
Halfway Coffee

로컬 카페가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는 방법
19세기 영국식 건축물 웨스턴 마켓이 자리하며 골동품 골목, 스트리트 푸드 거리가 이어지는 동네 셩완(Sheung Wan). 이곳은 홍콩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유서 깊은 빈티지 가구와 찻잔이 가득한 하프웨이 커피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 오전 8시에 문을 여는 덕에 벌써 북적거린다. 하프웨이 커피의 대표 토미 추이(Tommy Chui)에게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여는 이유를 묻자 “홍콩에는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아침 일찍 오픈하는 카페가 많아요.”라는 대답을 건넨다. 요리사 출신의 추이는 차찬텡부터 미쉐린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다이닝 공간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하프웨이 커피를 오픈했다. 그는 “홍콩은 변화가 너무 빨라요. 오래 전부터 개인 SNS을 통해 사라지는 모습을 매일 기록하고 있는데요, 하프웨이 커피도 그 기록의 연장선인 셈이죠.”라며 카페 설립의 계기를 밝힌다.
1978년에 지은 매장 안에는 옛날 공영 주택에서 사용하던 접이식 나무 의자, 공항을 이전하면서 버려진 의자 등이 어우러져 한층 홍콩스러운 분위기를 돋운다. “홍콩 사람들은 대부분 좁은 집에 살기 때문에 접이식 의자를 많이 사용해요.” 추이는 공간 안 작은 이야기가 모여 그곳만의 느낌을 만든다고 믿는다. 어디서든 커피 내리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바의 반대편 벽면에 붙인 거울, 어둠과 빛의 적당한 균형을 신경 쓴 조도, 매장 입구에 있는 테이블을 제외하고 수시로 바뀌는 가구 등. 추이의 공간 철학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이 카페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대표 메뉴는 플랫 화이트와 롱간 허니 라테(Longan Honey Latte, 중국 남부 지역의 4대 진과로 꼽히는 롱간(용안)의 꽃에서 수확한 꿀로, 꽃 향기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다. 라테에 들어가는 꿀은 인근 농장에서 직접 공수받아 사용하고 모든 메뉴를 매장에서 직접 개발하는 등 건강한 음료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카페 옆에는 추이의 수집품을 전시한 하프웨이 뮤지엄이 있다. 각 제품에 얽힌 히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언제든 그에게 문의해보자. 두 눈을 반짝이며 보다 희귀하고 신기한 이야기가 담긴 기물을 보여줄 테니.

푀유
Feuille

지속 가능한 미식을 위한 대장정
“홍콩은 1년 365일 새로운 맛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미식 도시라고 생각해요.” 홍콩을 한 마디로 표현해달라는 물음에 프렌치 모던 레스토랑 푀유의 수석 셰프 조리스 루소(Joris Rousseau)는 위와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센트럴 고층 빌딩 5층에 자리한 푀유는 프랑스 출신의 오너 셰프 데이비드 투테인(David Toutain)이 이끄는 곳으로, 홍콩의 풍부한 식자재를 활용해 자연에서 영감 받은 프렌치 요리를 선보인다. 2024년에는 미쉐린 1스타와 그린스타(자연 자원 보전, 생태계 다양성 보호, 근거리 식자재 사용, 동물 복지 실현, 제로 웨이스트 등 다섯 가지 이상의 항목을 충족시키는 곳에 부여된다)를 각각 획득하며 요리에 대한 창의성과 열정, 지속 가능한 노력을 인정받았다.
푀유에는 도시 전경을 내려볼 수 있는 총 9개의 테이블이 준비돼 있다. 돌의 질감을 살린 듯한 벽지와 나무 소재의 가구가 편안함을 선사하고, 선반 곳곳에 각종 식자재가 발효돼 있는 유리병이 오브제처럼 놓여 있다. 2023년 푀유에 합류한 루소의 말에 따르면, 푀유는 아르페지(L’Arpege), 무가리츠(Mugaritz) 등 최정상 레스토랑을 거친 투테인의 사명과도 같은 공간이다. 홍콩의 식자재로 프렌치 퀴진에 도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곳의 자연을 존중하고 현지 농장과 협력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 때문이다.
푀유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식자재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재배하는 현지 농부에게서 공수한다. 메뉴판 뒷장에 각 식자재의 재배 지역이 지도로 그려진 걸 보니 이들의 진심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푀유에서는 식자재의 뿌리부터 잎, 껍질까지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다. 시그너처 빵과 함께 제공하는 소스 ‘딜 필 필(Dill Pil Pil)’에는 이들이 지향하는 제로 웨이스트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루소는 “생선 뼈를 천천히 익힌 다음 콜라겐을 추출하고 수제 딜 오일과 섞어 완성한 소스예요. 식자재 낭비를 최소화한다는 저희의 약속을 보여주는 대표 메뉴죠.”라고 덧붙인다.
유년 시절, 정원을 가꾸던 조부모 밑에서 자란 루소에게 지속 가능한 미식의 실천이란 자연스러운 일이다. 숨 쉬듯 당연하게 제로 웨이스트 원칙을 지키고 자연과 농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든 요리에는 어떤 맛이 나는지 푀유에서 확인해보자.

숍 비
Shop B

다이파이동의 새로운 얼굴
머리 위로 네온사인이 길을 비추는 홍콩의 밤거리는 누구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고 1980~90년대 홍콩으로 데려가는 듯하다. 셩완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사이잉푼(Sai Ying Pun)의 거리도 네온사인의 불빛으로 물들고 있다. 저녁 영업을 시작하는 다이파이동은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놓으며 손님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폐차장 건너편에 자리한 숍 비는 우리가 알던 전형적인 다이파이동의 모습과는 다르다. 마치 클럽에 온 것처럼 분위기를 압도하는 트렌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의 젊은이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한데 섞여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차찬텡과 다이파이동 그 사이 어디쯤을 닮은 숍 비는 다이파이동의 전통 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젊은 세대의 고군분투가 담긴 곳이다. “저와 같은 세대라면 누구나 다이파이동의 음식을 먹고 자랐죠.”
요식업에 종사하던 나탈리 응안(Natalie Ngan)은 잊히는 다이파이동의 전통 음식과 문화를 간직하고자 숍 비를 오픈했다고 설명한다. 응안의 말에 따르면 다이파이동의 음식은 불맛으로 결정된다. 내부에 주방을 갖춘 숍 비에서 불맛을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렵지만, 전통 음식을 현대적인 요리법으로 재해석하며 다이파이동의 향수를 음식으로 표현한다고. 대표 메뉴로는 비둘기 튀김, 발효 검은콩 가리비찜, 포트 와인을 곁들인 굴 튀김 등이 있다. 혼자 여행 중이라면 더욱 더 망설이지 말고 숍 비의 문을 두드려보자. 1인당 정해진 가격(388~588홍콩달러)에 6~8개 메뉴를 주문하는 ‘나만의 메뉴’도 있다.

야들리 탭룸
Yardley Taproom

홍콩에서 만난 크래프트 정신
크래프트 정신은 으레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 정신 혹은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저항 정신을 뜻한다. 센트럴이 내려다보이는 오르막길에 자리한 수제 맥주 펍 야들리 탭룸에서 홍콩의 크래프트 정신을 온전히 느껴보자. 이곳은 수제 브루어리 야들리 브라더스가 운영하는 펍으로, 구룡반도에는 공장을, 란콰이퐁에는 양조장을 두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스코틀랜드 출신의 야들리 형제가 브루어리를 이끈다.
홍콩에 정착한지 어느덧 15년이 된 창립자 루크 야들리 (Luke Yardley)는 홍콩의 풍부한 식자재로 수제 맥주를 만들기 시작해 2016년 야들리 브라더스를 설립했다. 페일 에일, IPA, 스타우트 등의 기본적인 크래프트 맥주부터 높은 도수의 맥주나 사워 비어, 캐스크 에일 등 트렌디한 맥주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는 것이 야들리 맥주의 가장 큰 특징. 대부분의 맥주는 3년간의 숙성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다양하게 진행하는데, 가장 흥미로운 제품은 베트남 쌀국수 맛을 표현한 맥주다. ‘이것은 쌀국수가 아니다(This is not a pho)’라는 이름의 이 맥주는 깔끔한 오이맛과 상큼한 라임이 느껴져 입 안에 활기를 돋운다. 야들리는 이것은 쌀국수가 아니다를 마실 땐 베트남 음식을 곁들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처럼 그는 맥주만큼이나 페어링 음식에도 진심이다.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켄 웡(Ken Wong)을 헤드 셰프로 스카웃해 주방을 맡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웡은 발효한 샤프란을 섞어 치즈를 만들고 토마토를 직접 발효시켜 소스를 만드는 등 서양 음식에 전통 요소를 가미해 창의적인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