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임과 김멋지의 야반도주

 

ⓒ 정수임

Escape into the World
위선임과 김멋지의 야반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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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여행을 할 때 꼭 지키는 나만의 의식(ritual)이라 할 만한 게 있는지요?
S 책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도시를 옮길 때마다 한국에 계신 엄마한테 엽서를 썼어요. 솔직히 말하면 지극한 효심에서라기 보다 혼자 계실 엄마한테 죄송해서 어떻게든 만회하기 위해 시작한 거였어요. 첫 도시부터 엽서를 띄우기 시작해서 중간에 정말 여러 번 포기할 뻔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해냈죠.
M 저는 코끼리를 좋아하거든요. 세상에 코끼리를 소재로 한 물건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런데 그게 다 짐이잖아요. 속옷을 3장 챙기냐, 4장 챙기냐를 두고 고민하는 판에, 장식품을 사는 건 무리였죠. 그래서 가방에 달고 다닐 수 있는 코끼리 장식 딱 하나만 구입하고 보는 걸로 만족하면서 다녔어요. 그 외에 꼭 해야지, 그런 건 없었…
P 예를 들면, 현지 술을 꼭 맛본다든가…
M 아, 그거였구나!!
S 그건 정말 숨쉬듯이 한 거여서 전혀 의식을 못 했네요. 무조건 했죠!
M 밥 먹듯이 한 것 중에 하나라. (웃음)
S 아무래도 배낭여행자니까, 한국의 소주처럼 그 나라의 싼 술을 항상 즐겼어요.
P 그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술이 있나요?
M 브라질에 카이피리냐(Caipiriñha)라는 칵테일이 있어요. 카샤샤(Cachaça, 사탕수수)로 만든 브라질 증류주에 라임이랑 설탕을 넣어서 만드는데, 빨대로 마시면 설탕 알갱이 한 알 한 알과 라임의 새콤함이 어우러져서 정말 너~무 맛있는 거예요. 많이 마셨어요!
P 책, 영화, 음악, 방송, 만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두 분의 여행에 영감을 준 작품이 있을까요?
M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다카하시 아유무의 〈러브 앤 프리〉라는 책이에요. 제 인생이 여행 때문에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영향을 준 책이죠. 처음 선임이랑 다녀온 인도 여행이 정말 좋았거든요. 돌아와서도 그 추억을 곱씹으며 지냈는데, 어느날 선임이가 다시 떠나겠다는 거예요. 휴학하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가겠다며 같이 가자고. 당시 저는 빨리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거절했어요. 등록금도 대출받고 알바해서 생활하는 마당에 무슨 여행이냐 싶었죠.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어요. 절반도 채 안 읽었는데 주인공이랑 여행자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와요. “넌 왜 여행을 떠나 왔어?” “지구에 태어났으니까 지구를 더 보고 싶어서.” 바로 이 문장이 제 마음을 울린 거예요. 그래, 이왕 태어난 거 더 보자! 곧장 책을 덮고 선임이한테 같이 간다고 했죠. 그렇게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서 여행을 했어요.
P 프랑스의 셰프 앤서디 보댕은 “여행을 통해 우리가 무언가를 얻듯, 우리도 무언가 좋은 것을 여행지에 남기고 오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습니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여행지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요?
M 우리는 뭘 남기고 왔을까, 반대로 우리는 여행자를 볼 때 무엇을 얻지? 라는 생각을 해보니까 ‘여행자만의 에너지’가 답인 것 같아요.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을 즐기고 있는, 설레고 즐겁고 때론 지치지만 또 도전하는 긍정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를 남기고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지인은 그런 여행자를 보고 일상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S 여행자의 그런 기운이 좋아서 카우치 서핑이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M 저도 일상을 살다가 여행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두근거리고 응원하고 싶고, 그 날 하루는 왠지 활기가 생겨서 새로운 골목도 가보게 되고…. 그런 식으로 일상을 새롭게 살아볼 에너지를 얻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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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여행 파트너로서 서로의 장단점을 꼽는다면요?
S 제가 생각하는 멋지의 장단점은 굉장히 명확해요. 장점은 무던하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거. 아무래도 저한테 그런 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더 좋아보이는 거겠죠? 단점도 똑같아요.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 (웃음) 저도 계획적인 성향이 아니니까, 상대방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죠. 지금은 그런 점까지 받아들이고 인정하게 됐지만.
M 선임이는 굉장히 적극적이에요. 새로운 것, 무서운 것, 안 해본 것은 무조건 시도해요. 선천적으로 겁이 없죠. 반면, 저는 겁이 많은데 이 친구가 옆에 있다 보니 제가 안 할 법한 것도 시도하면서 훨씬 더 재미있는 여행을 했어요. 단점은 뭐,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겠어? 안고 살아야지. 하하하.
S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M 딱히 여행을 같이 못 하겠다, 그 정도의 단점은 없어서... 딸기 농장에서도 선임이가 포장을 잘해서 돈을 잘 벌었거든요. 가계에 보탬도 되지, 모자랄 게 없어요. 하하하.
P 크게 싸운 적은 없나요?
S 머리끄덩이를 잡을 만큼 크게 싸운 적은 없어요. 분위기가 싸늘해진다거나, 냉전이랄까 그런 적은 많죠. 농담처럼 제가 더 참았다고 말하지만, 저도 알아요. 이 친구가 참아주는 부분이 훨씬 많다는 걸. 제가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을 부릴 때 멋지가 웃음으로 대응하면 돌아서서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러면 다음에 좀 더 배려하게 되고, 그랬죠.
M 한 거였니? (웃음)
P 만약 혼자 떠나야 한다면 가고 싶은 여행지는? 혹은 상대방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는?
M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는 있어요! 그게 어디든 여행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요. 이동하는 것부터 엄청 힘든. 그런 곳에 선임이를 던져 놓고 저는 거실에 앉아서 선임이의 여행 기록을 재미있게 읽는 거죠. 고생은 얘가 하고 재미는 제가 보고.
S 별로네요.
M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워낙 글을 잘 쓰니까.
S 멋지는 늘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어디에’ 가고 싶다고 하진 않는 것 같아요.
M 어디든 낯선 곳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 최근에 파리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멀리 에펠탑이 바라보이는 집에서 프랑스 와인을 마시면서 거리의 사람도 구경하고, 그 도시의 ‘낭만’을 느껴보고 싶다. 파리는 〈트래블러〉 촬영 때문에 잠깐 경유한 게 전부예요. 그곳에서의 일상이 제 생각처럼 낭만적일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여행을 꼭 떠나야 한다면 좀 더 이국적인 곳으로 갈 것 같긴 해요. 아프리카도 좋고, 중앙아시아도 좋고. 저희 둘 다 익숙하지 않은 걸 좋아해요. 유럽이나 미국처럼 미디어를 통해서 많이 접한 문화권 말고 완전히 낯선 문화권. 둘이 처음 같이 간 인도도 그랬고, 그 이후에 휴학하고 돈 벌어서 간 터키, 이집트도 그랬고. 항상 덜 접해본 곳에 마음이 가더라구요.
S 저도 떠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라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생각이 안 나요. 보통 항공권을 검색해서 젤 저렴한 곳 그중에서도 문화권이 다른, 그리고 안 가본 곳을 선택하게 되죠. 발리는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서핑도 해보고 싶고요.
 


ⓒ 정수임
 
M 아, 휴식이 필요하시군요?
S 맛있는 것도 먹고. 하지만 저 역시 그 장소 자체가 목적인 건 아니에요. 멋지는 음식, 식문화, 식도락, 음주, 가무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여행 콘텐츠를 꼭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이 친구가 콘텐츠를 뽑아내면 저는 그걸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유투브를 하든 뭘 하든, 옆에서 콩고물을 얻어먹고 싶어서 적극 추천해요. 어디든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 시국이 안정되면 중국도 좋을 것 같고요.
M 오, 중국!! 제가 또 향신료에 완전 강하거든요.
S 보세요, 눈빛이 다르죠? 저희가 책을 쓸 때도 각자 원고를 쓰고 바꿔 보면서 첨삭하거나 수정하곤 했는데, 멋지가 쓴 글에는 먹는 내용이 정말 많았어요.
P 중국 얘기에 벌써 신나신 것 같은데요. 그럼 마지막으로 향신료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만 들려주세요.
S 멋지는 고수를 정말 좋아하고 저는 고수를 못 먹어요.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여러 문화권에서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식자재다 보니, “고수 빼주세요”라는 말을 각 나라 언어로 맹렬하게 외우고 다녀야 했죠. 그런데 주문할 때 아무리 간절하고 명확하게 전달해도 정작 음식이 나오면 고수가 떡 하니 들어있는 경우가 허다한 거예요. 방금 전에 말로 하고, 번역기에 띄운 문장도 보여주고, 고수를 가리키며 양팔로 엑스(X)를 수차례 그렸는데 그릇에 고수가 둥둥 떠있으니, 나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 열이 뻗쳤죠.
M 선임이가 참다 못해 조리 과정을 감시하더라고요. 주머니 사정이 빤한 배낭여행자답게 주로 허름한 노점상에서 식사를 해결했던 터라, 주방을 엿보는 게 딱히 어렵지 않았거든요.
S 막상 관찰해보니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어요. 각 식자재를 넣는 순서와 동작이 워낙 손에 익어 자기도 모르게 고수를 넣게 되는 거죠. 명령어가 입력된 기계처럼요. 잠시 후에야 그걸 깨닫고 껄껄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는데, 뭐 어쩌겠어요. 따라 웃는 수 밖에. 하하하. 결국 저는 고수 문화권(?)에서는 식사를 제대로 못한 적이 많아요. 멋지요? 친구의 고충이 곧 나의 기쁨이라는 듯 두 그릇 원샷하고 절 보며 웃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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