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우) 어릴 때 부산에서 일본 스트리트 패션지의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 그래서 부산을 떠올리면 구제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지. 석준이 너를 봐도 옷을 잘 입잖아.
(김석준) 부산의 빈티지 루트를 하나의 동선으로 딱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구제 골목이라는 곳이 있긴 있어요. 남포동 국제시장에. 2000년대 초반, 구제 골목 옷가게에서 일했는데, 그 때 국제시장에 사입하러 자주 다녔죠. 아침 일찍 출근 전에 가서 한 바퀴 돌아야 돼. 시장 상인들도 창고에 가서 매일 새로운 물건을 가져다둔단 말이에요. 그러면 내가 제일 먼저 둘러보면서 고르는 거예요. 괜찮은 리바이스 빈티지가 있어도 정작 파는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이거 한 3,000원이면 되겠네?” 이런 식이죠.
동묘랑 느낌이 좀 비슷한데? 동묘에 가보면 재미있는 게 옷은 진짜 엄청 많은데 가격표가 없잖아. 궁금해서 물어보면 일단 나를 죽 스캔하시더라고. 그 다음에 가격이 나와. 하하하. 가격을 알기까지 실랑이를 해야 돼. 깎기도 해야 하고. 보물찾기지, 진짜.
그렇죠. 그런 느낌이에요. 지금은 다들 옷걸이에 걸어놨지만 그 땐 물건이 막 쌓여 있었어요. 보통 ‘짝튼다’고 하는데…. 마대자루를 ‘짝’이라고 했어요. 옷을 수입할 때 그 안에 가득 담아 기계로 압축을 해요. 압축하려고 감은 쇠를 잘라 ‘짝을 트면’ 마대자루가 산처럼 부풀어 오르죠. 그런데 짝을 받을 땐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몰라요.
지금은 어때?
지금도 구제 골목이 존재하긴 해요. 이젠 다들 웬만큼 알기도 하고, 셀렉트 숍을 운영하는 친구들이 시장 동선까지 파악해서 싹쓸이해 가니까 옛날처럼 재미는 없어졌지. 그래도 부산에 가면 꼭 들러요. 강박 같은 게 있어요. 부산에 왔으니까 국제 시장에 가야 되고, 국밥도 먹어야 되고. 그러고 나서야 다음 일정이 시작되는 거지.
하하하. 정리를 해보자. 부산에 내려가면 일단 구제 골목을 간 다음에….
부모님 집에 가서 짐을 풀고 슬슬 친구들한테 전화해서 술 약속을 잡는 거죠. 부대에 가면…
부대?
우리는부산대학교를 부대라고 불러요.
부산대 쪽에도 굉장히 유명한 빈티지샵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니까요! 그 유래는 진짜 오래됐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요.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알죠. 일본 빈티지 매거진 중에 〈붐〉이랑 〈쿨〉이란 잡지가 있었어요.
〈쿨〉 알아! 나도 명동에 나가서 그 잡지를 사보곤 했어.
맞아요. 그런 거 보면서 구제를 ‘디비는’ 맛이 있거든요. 디비는 게 뭐야? 찾아낸다. 우리끼리 ‘구제 디비러 갈래?’ 이러죠. 부대에 가면 괜찮은 빈티지 아이템을 구루마나 자판에 올려놓고 팔았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였고, 물건 파는 형들도 전부 학생 신분에 저랑 한두 살밖에 차가 안 났어요.
그 형들은 구제 골목에서 옷을 디빈 다음 부대에서 구루마로 옷 장사를 시작했던 거야?
남들보다 엄청 빨랐던 거죠. 뉴발란스가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때인데 구루마에 올라와 있고. 엄청 바가지를 씌워 팔아도 어쩌겠어, 너무 예쁜데! 당시 부대가 그런 맛이 있었죠. 힙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뭐하는 사람일까’ 서로 궁금해하다가 결국 다 친해지곤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