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여름과 〈레버넌트〉의 겨울. 비포장도로를 타고 스프레이 밸리 주립공원 깊숙이 들어서니 6 카나나스키스(Kananaskis)에서 촬영한 영화 속 배경이 그려진다. 카나나스키스는 밴프나 레이크 루이스의 번잡함을 피해 캐나다 현지인이 즐겨 찾는 지역이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보석 같은 자연이 숨 쉰다. 황량하지만 심도 깊고, 처연하면서도 장엄한.
물길은 잿빛을 머금고 초지는 황갈색을 띠고 있다. 그 뒤를 가로막은 날 선 봉우리들은 강풍이 바위를 할퀴고 간 상흔 같다. 물길은 평원과, 평원은 산과 구분되고, 산은 해발 2,500미터의 수목 한계선을 따라 숲과 바위의 경계가 확실히 구분되어 짙은 풍경의 층이 나뉜다. 두 눈으로도, 카메라 렌즈로도 자연의 각기 다른 장면을 온전히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그간의 로키산맥이 애써 숨겨놓은 듯한 자연의 속살인가. 보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아이맥스 영화 같은 풍경을 가슴에 품고, 도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우리는 또다시 길가에 멈춘 차량들을 발견한다. 곧바로 짙은 갈색의 동물 하나가 도로변에 어슬렁 나타난다. 7 그리즐리 베어다. 둥그런 몸집의 곰은 작고 단단한 눈망울로 차에 탄 관객들을 쳐다본다. 예상치 못한 신비로운 조우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낸다. 뷰파인더 안에서 그리즐리 베어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장난스레 흙을 파헤친다. 그 모습은 마치 이 땅에는 다른 생명도 존재한다는 확실한 표현 같다. 거대한 로키산맥 안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며칠 동안 산의 장막에 둘러싸여 길 위를 달렸건만, 이제 자연 가까이 겨우 몇 미터 더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