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시티의 초록색 대문

 

ⓒ 피치 바이 매거진

Between Disconnection and Connection
단절과 연결, 그 사이 어딘가로의 여행

서울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이너시티에서는 우리 모두 이방인이 된다.

인터뷰어 박진명
인터뷰이 최재원(이너시티 대표)

서울 정릉 시장 인근 큰 도로변, 한 건물 뒤로 난 작은 계단을 내려가자 주택가가 나왔다. 성인 2명이 나란히 지나가면 꽉 찰 만큼의 좁은 골목을 지나 초록색 대문을 찾았다. 리트릿 센터 이너시티에 다다른 것. ‘노크하세요. 1분 안에 나옵니다.’ 대문에 적힌 안내문대로 똑똑 문을 두드렸다. 이너시티 최재원 대표가 문을 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한옥인 것 같기도, 동남아시아 전통 가옥인 것 같기도 한 공간이 펼쳐졌다. 부엌 위 천창에서 떨어지는 자연광과 낮은 조도의 조명만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실내가 어두워서인지 이국적인 향 때문인지 갑자기 낯선 기분이 들었다.
“원래 방 3개와 마당이 있는 집이었어요.” 마당은 (전 주인이) 바닥을 메워 부엌으로 만들었고, 방을 나누고 있던 벽을 부숴 큰 스튜디오 형태의 거실로 변신시켰다. 이너시티는 숙박부터 대관까지 다양하게 활용되는 공간이다. 더블 베드가 있는 침실이 한 개. 숙박은 한 팀만 가능하냐 물으니, 대피소나 산장처럼 거실에서도 다같이 잘 수 있도록 침구류를 준비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너시티에서는 뮤지션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거나, 차, 요가, 명상,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오늘은 또 어떤 여행자가 이곳을 다녀갈까?
이너시티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하드코어에 가까웠던 직장인 시절, 나만의 작은 여행법을 만들었어요. 멀리 떠날 날만 고대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차라리 자주 짧게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였죠. 작은 여행은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과 완전히 단절된 경험을 할 수 있는 ‘페이크 트립(Fake Trip)’인데요. 한마디로 짧지만 강렬하게 여행하는 기분을 내는 거예요. 저처럼 여행하는 사람이 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제 여행 경험을 담은 1 책도 냈죠. ‘한 번의 큰 여행보다 10번의 작은 여행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간으로 구현한 게 결국 이너시티인 셈이에요.

이전엔 어떤 일을 했어요?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에디팅하는 일을 했어요. 바로 이전엔 음악 콘텐츠를 만들었고, 광고 회사에 다닌 적도 있어요. 지금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이었죠.

정릉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일단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서울 서촌과 안국동 일대를 좋아했어요. 그 동네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면서 부암동으로 자주 여행을 떠났고, 북악스카이웨이를 넘어 정릉까지 오게 됐는데 작은 여행을 경험하기에 좋은 동네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죠. 걸어서 북한산도 갈 수 있고, 북한산에서 흘러 내려온 1급수 정릉천에선 하교하는 아이들이 가재를 잡기도 해요. 식당과 카페에서 풍겨지는 로컬 감성도 재미있고, 많은 예술가가 작품 활동을 펼치는 동네인 만큼 곳곳에서 신선한 영감을 발견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물가가 저렴해요(웃음). 생활 반경을 조금만 벗어나도 완전히 일상과 분리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죠.

1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2017, 휴머니스트 출판

비어 있던 100년된 가옥을 직접 고쳤다고요.
일본 적산가옥과 한옥이 묘하게 섞인 건축 양식으로 미루어 일제강점기에 지은 집으로 추정해요. 이 동네에 있는 주택은 거의 대부분 이런 형태를 띄어요. 오래 거주한 주민도 많고요. 그래서 더 로컬리티가 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공사는 제로웨이스트 공법으로 시공하는 회사에 맡겼어요. 건축물의 원형은 최대한 살리면서 쓰레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업하는 업체였어요. 저는 인테리어나 공간의 원래 기능을 살리는 디테일한 부분을 거들었어요. 인테리어에 사용한 합판은 대부분 재활용했고, 아궁이가 있던 자리에는 불멍할 수 있는 조명을 놓았죠.

인테리어 콘셉트는 무엇인가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길 바랐어요. 네팔이나 인도에서 트레킹할 때 만나는 대피소나 산장처럼 지친 이들이 낯설면서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행지에서 사온 물건과 빈티지 가구를 활용했죠. 이곳에서 명상이나 요가를 주제로 소규모 클래스가 자주 열리는 걸 보면 인테리어에 제 의도가 잘 담긴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첫 프로젝트에서 책을 읽고 글 쓰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어요. 함께 모여 앉아 마음 속에 품어둔 지난 각자의 과오나 비밀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공감하다 보니 서로 금세 가까워지더라고요.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 속마음을 꺼내 보여주고 약점을 고백하는 일이 더 쉬울 때가 있잖아요. 외부와 단절되고 싶어 찾아온 공간에서 오히려 누군가와 끈끈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나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2 ‘라이프쉐어’ 프로젝트도 운영하고 있죠. 이너시티와는 정반대의 서비스가 아닌가요?
라이프쉐어는 제가 회사 다닐 때 시도한 질문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서비스인데요. 30대 때 작은 돌부리에도 너무 쉽게 넘어지는 제 자신이 답답한 적이 있어요. 주변에 힘든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죠. 당시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면서 외국인 여행자에게 삶의 본질과 가치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질문과 답을 주고 받는 동안 답답함과 우울감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죠. 이후 페이스북으로 사람들을 모아 같은 콘셉트로 커뮤니티를 개설했고, 라이프쉐어라는 브랜드로 이어졌어요. 지금은 보다 전문적이고 고도화한 서비스로 기업 문화 워크숍이나 교육도 진행하고 있고요.

2 라이프쉐어는 2015년 시작한 이너시티의 원형으로, 대화, 글쓰기, 명상, 표현, 여행에 관한 콘텐츠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브랜드다.

작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어요. 작은 여행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거주지와 아무리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숙박을 하는 거예요. 여행지에선 기본적으로 집을 떠났다는 불안감이 있거든요. 그러다 숙소가 정해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생기면 그 때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고 동네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요. 결국 여행에 필요한 건 단절과 안정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반차 쓰고 떠나는 작은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생활 반경과 가까운 곳에서 하룻밤 머문 뒤 다음날 바로 출근할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에 다녀온 작은 여행은 어디인가요?
매일 이너시티를 오가는 자체가 작은 여행이죠.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3개월 전, 태국 치앙라오에서 열린 샴발라 페스티벌(Shambhala Festival)에 다녀왔어요. 아시안 히피들이 모여 자연을 무대로 명상, 요가, 음악 등을 이야기하는 축제예요. 10일동안 캠핑을 하면서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찾고 마음 맞는 친구들을 만나 평화롭게 즐기다 왔죠. 이너시티에서 샴발라 에프터 파티를 열어 그곳에서 배운 것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궁금해요.
올해 두 권의 책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하나는 질문과 대화에 관한 책이고 또 하나는 여행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합정에 또다른 이너시티의 오픈도 앞두고 있어요. 다른 이름과 콘셉트로 새로운 작은 여행지를 마련할 예정이죠. 아주 먼 미래에는 온전한 자연에 둘러 싸인 곳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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