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의 잠재력
13 숭게이 부로 습지 보호지(Sungei Buloh Wetland Reserve)는 싱가포르에 있는 4개의 자연 보호 구역 중 하나다. 1993년 싱가포르 북서쪽 해안의 습지를 자연 공원(Nature Park)으로 지정해 일반인에게 개방한 것이 그 시작. 현재 맹그로브 숲, 갯벌, 연못 등을 포함해 약 200헥타르에 이르는 습지 일대가 보호지에 속해 있다.
이곳의 가치를 처음 알아본 이들은 조류 탐사객이었다. 매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추위를 피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는 14 철새들이 이 습지에서 포착된다. 그들에게 이곳은 시베리아에서 호주까지 가는 13만여 킬로미터 길이의 긴 여정 중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우는 중요한 쉼터다. 물론 왜가리와 백로, 물총새, 태양새 등 수많은 텃새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보호지에 조성된 트레일을 따라 걷다 보면 대포처럼 거대한 초망원 렌즈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집중하는 탐조객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이글 포인트(Eagle Point)가 대표적 장소다. 조호르 해협(Straits of Johor) 쪽으로 비죽 튀어나온 데크에 서니 머리 위로 흰배바다수리(white-bellied Sea- eagle) 서너 마리가 날아다니고, 물가에는 왜가리가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또 하나 시선을 끄는 것은 맹그로브 숲이다. 습지와 바다 사이에 형성된 맹그로브 숲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다. 습지 안내를 맡은 가이드 림짐청(Lim Gim Cheong)은 싱가포르에 쓰나미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가 맹그로브 숲 덕분이라고 말한다(실제로 쓰나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동남아시아 많은 지역이 개발을 목적으로 맹그로브를 파괴했다). 이 지대의 토양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식물이 서식하기 힘든 환경인데,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살아 남은 관목이 파도와 강풍을 막아주는 것.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능력이 일반 숲에 비해 최소 10배나 높아 ‘탄소 저장고’라고도 불린다. 알고 보면 숭게이 부로 습지의 생태계를 지키는 주인공은 싱가포르 정부나 ‘보호지’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천연 방파제이자 자연 정화 시스템인 맹그로브다.
해안, 숲, 철새 관찰 등의 테마별 트레일이 습지 구석구석을 파고 든다. 가장 긴 구간도 2킬로미터를 넘지 않아 걷기에 부담이 없다. 다만, 딜레니아(Dillenia), 판다누스(Pandanus) 등 다양한 열대 식물과 맹그로브에서 서식하는 머드 랍스터(mud lobster)부터 앙증맞은 딱정벌레까지 온갖 생명체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등장하니 느긋한 일정으로 방문하길 추천한다. 운이 좋으면 입을 쩍 벌리고 일광욕 하는 악어나 한가롭게 태닝 중인 이구아나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