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네에서는 아직 게일어를 많이 쓸 걸요? 도로 표지판에도 게일어만 써 있어서 여행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영어를 병기한 표지판으로 싹 바꿨죠.” 코크에서 만난 현지인은 딩글 반도를 그렇게 설명했다. 아일랜드의 모국어인 게일어(Gaeilge)는 켈트어에 속하는 언어. 현지에서는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고 학교에서도 정식으로 배우지만, 실제로 쓰는 이는 많지 않다. 영어와는 사용하는 알파벳, 단어, 어순도 다르기에 외지인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언어를 지킨다는 사실은 아일랜드에선 전통 문화가 일상적이라는 뜻일 게다.
딩글 반도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꼽힌다. 동시에 아일랜드의 끝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의 최서단 마을 던킨(Dunquin), 최서단 곶 던모어 헤드(Dunmore Head) 그리고 가장 높은 고갯길 코너 패스(Conor Pass). 딩글 반도의 여행자는 이런 장소를 순례하듯 거치며 감탄한다.
커브와 낭떠러지가 중첩되는 코너패스를 넘자 갑자기 평온한 해안 풍경이 등장한다. 초록에 뒤덮인 저지대가 드넓게 펼쳐지고, 돌담과 양 떼 사이로 드문드문 가옥들이 서 있다. 먹구름이 몇 분간 소나기를 뿌리다 동쪽으로 밀려난다. 그 아래로 돌출된 도로가 딩글 타운을 관통해 계속 서쪽으로 이어진다. 북대서양의 장대한 바다는 해안 절벽에 파도를 밀어 넣어 흰색 포말을 일으킨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로 질주하듯 뻗은 해안 도로. 드문드문 지나가는 차량은 햇빛에 반사돼 눈을 찌르고 대서양의 윤슬은 하염없이 어지럽다.
마침내 아일랜드의 서쪽 끝이 모습을 보인다. 던모어 헤드 그리고 그곳보다 더 끝인 블래스킷 제도(Blasket Islands)다. 블래스킷 제도는 한때 ‘미국의 바로 옆’이라고 불렸고, 소수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세상의 끝에 살던 그들은 게일어만 사용하며 전통을 고수했다고 한다. 본토와 불과 약 2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확연히 다른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는 1953년 모든 주민이 내륙으로 강제 이주하기 전까지 계속됐다.
던킨의 해안에 부딪히는 물살에 한여름의 늦은 햇살이 눈부신 자국을 남긴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이름 모를 풀이 쉴 새 없이 들린다. 멀리 보이는 그레이트 블래스킷섬(Great Blasket Island)의 초원에는 양들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 이제 그들이 섬의 주인이다. 텅 빈 가옥의 뒷마당으로 걸어 들어가 울음소리만 내는. 오른편으로 조금 떨어진 이니슈투스커트섬(Inishtooskert)은 마치 누워 있는 거인 같다. 섬에 남은 인간의 마지막 흔적일까. 눈앞의 풍경은 매우 긴 잔상을 남긴다. 여기가 아일랜드의 끝이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