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을 거예요. 인도네시아에서도 바뉴왕이뿐이죠.” 가이드 앤디(Andi)가 발루란 국립공원에 들어가며 이야기한다. 자바섬 동북쪽 끄트머리를 차지한 국립공원의 매표소에는 ‘작은 아프리카’라는 홍보 문구가 써 있다. “이른 새벽에 와야 표범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지금은 어렵겠네요. 아, 원숭이는 조심하세요. 먹을 거라면 다 훔쳐가버려요.”
건조한 수풀 사이로 뚫린 길은 사바나 평원으로 일행을 인도한다. 빛 바랜 대지는 누런 잡초와 우산처럼 가지를 펼친 수목 그리고 몇몇 야생동물의 터전이다. 작은 아프리카를 상상하며 사람들이 열심히 셀피를 촬영하면서 한눈을 파는 사이, 자바원숭이가 종종걸음으로 도로변에 세운 자동차로 접근한다. 혹시나 과자 부스러기는 없는지 살펴볼 요량인 것 같다.
사바나 평원과 발루란산이 포개지는 배경 속으로 반텡(banteng) 한 마리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걸어가더니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혹시나 걱정되어 물이 고인 늪을 향해 몇 발자국 다가갈 찰라, 공원 직원이 제지한다. “가만히 두는 게 좋아요 오히려 사람의 때가 타면 동물이 물을 찾으러 늪에 오지 않으니까요.” 자연의 생리를 괜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육중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던 반텡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늪을 빠져나와 느린 걸음을 이어간다.
발루란 국립공원의 해변은 사바나와는 전혀 다른 생태를 숨기고 있다. 공원 내 바마 해변(Pantai Bama)으로 이동해 자바원숭이를 찾는다. 이곳에 서식하는 자바원숭이는 평탄한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의 백사장을 휘저으며 작은 게를 조곤조곤히 캐 먹는다. 그 옆으로는 진초록 맹그로브 숲이 수수히 펼쳐지고, 투명한 발리해의 해수면이 파란 하늘과의 경계를 지운다. 해산물을 먹는 원숭이의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강렬한 자연색에 희석되어 현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