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키웨스트, 아바나, 세렝게티 그리고 아이다호까지. 헤밍웨이는 지구 곳곳에 족적을 남겼다. 혹자는 헤밍웨이가 작품을 쓸 때마다 거주지를 옮겼다고 말한다. 실제로 키웨스트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완성한 헤밍웨이는 케첨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다. 선 밸리 로지 근처에는 헤밍웨이 하우스(Hemingway House)가 있다. 헤밍웨이 부부는 빌트인 텔레비전을 비롯한 첨단 시설을 갖춘 이 집에 지인들을 자주 초대했다고 한다. 1961년 어느 여름날 아침, 헤밍웨이는 현관에서 엽총으로 관자놀이를 쏘았다. 건강 악화와 편집증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내 메리는 그 장소를 폐쇄하고 반대쪽에 새로 현관을 냈다. 일반인은 집안 출입이 금지돼 있지만, 예전 그대로 보존해놓은 실내를 창 너머로 훔쳐볼 수 있다. 집 주변을 둘러싼 산등성이에 엘크 몇 마리가 거닌다. 허리 통증 때문에 선 채로 타자기를 두드리는 동안, 그가 바라보았을 산악 지역에는 이제 헤밍웨이 볼더스 윌더니스(Hemingway–Boulders Wilderness)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