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젤란의 십자가(Magellan’s Cross)의 목조 십자가 안에는 1521년 마젤란이 세부에 세운 십자가 잔해가 들어 있다고 전한다. 진위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른 아침 빛이 내리쬐는 십자가 아래에서 초를 파는 행상이 우리를 위해 기도를 읊으며 시누그(Sinug)를 출 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앞뒤로 스텝을 반복하는 시누그의 춤 동작은 오가는 물결을 본떴다. 하늘에 기도하는 이 춤의 기원은 고대 토속 신앙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가톨릭과 만나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시누그 춤에서 보듯,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이 도시는 외부 요인을 받아들이며 유연하게 자신만의 문화를 빚어왔다. 한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필리핀 문화의 밑바탕에는 바다가 있다. 필리핀에서 가장 작은 행정 단위인 바랑가이(barangay)는 최초의 정착민이 타고 온 배, 발랑가이(balangay)에서 유래했다. 함께 먼 길을 항해해 온 이들이 섬에 정착해 마을을 이룬 것. 더욱이 지진, 태풍, 홍수 등 자연 재해가 잦고, 문화가 교차하는 길목에 있던 섬나라에서는 사회적 유대가 필수적이었을 테다.
세부의 많은 랜드마크가 가톨릭 건축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 역할을 하는 것. 노점, 호텔 로비 등 세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아기 예수상 원본은 필리핀의 가장 오래된 가톨릭 성당인 산토 니뇨 성당(Basilica Minore del Santo Nino)에 있다. 세부 메트로폴리탄 성당(Cebu Metropolitan Cathedral)도 인근에 자리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에 적응하며 살아온 삶의 방식이 건축에도 담겨 있다. 지진에 대비해 성당 벽을 두껍고 낮게 설계하고 내구성 높은 코랄 스톤을 사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도심에서 차로 10분 달리면, 세부에서 가장 큰 쇼핑몰 SM 시사이드 시티 세부(SM Seaside City Cebu) 부지에 자리한 산 페드로 칼룽소드 예배당(Chapel of San Pedro Calungsod)을 만난다. 필리핀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건축 디자이너 카를로스 아르네즈(Carlos Arnaiz)가 설계했는데, 코랄 스톤의 일종인 막탄 스톤(Mactan stone)처럼 보이게끔 가공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100개 벽이 이루는 외관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인다. 7,600여 개 섬, 100여 개 인종 집단, 150여 개 언어로 이루어진 이 나라처럼 변화무쌍하다.
🎒Side Trip 필리핀의 설탕 수도, 바콜로드(Bacolod)는 더 루윈스(The Ruins), 발라이 니 타나 디캉(Balay ni Tana Dicang)처럼 아름다운 대저택 건축물을 간직하고 있다. 가면 축제인 마스카라 축제(Masskara Festival) 기간에 맞춰가면 좋다. 세부에서 국내선 항공편으로 1시간 거리.
인천국제공항에서 막탄 세부 국제공항까지 대한항공, 세부 퍼시픽 등이 직항편을 운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