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오 고속도로(Chuo Expressway)를 달리던 렌터카가 나가노현으로 들어서자 좌우로 산맥이 충돌한다. 겨울은 아직 서너 달 남았는데도 첨봉의 그림자가 드리운 경사면에는 간혹 눈의 흔적이 보인다. 여행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일본 알프스(Japanese Alps)다. 북쪽의 히다산맥(飛驒山脈), 남쪽의 아카이시산맥(赤石山脈) 그리고 그 중간쯤에 자리한 기소산맥(木曽山脈). 나가노를 처음 찾는 여행자는 해발 3,000미터의 험준한 봉우리가 이어지는 산맥을 바라보며 깊은 첫인상을 새길 수밖에 없다.
스와호수(諏訪湖)를 지나 치노시(茅野市)에서는 도로의 고도가 좀 더 높아지는 듯하다. 나가노는 이름과 다르게 고원과 계곡 그리고 분지를 십분 활용해 터전을 일군 지역이다. 일본의 시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시청이 서 있다는 치노시의 평균 해발 고도는 800미터. 여기에서 시의 동쪽으로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야츠가다케(八ケ岳) 연봉의 아래턱에 자리한 동네들의 고도는 더 높다.
저녁이 되자 30도를 오르내리던 한낮의 더위와 대비되게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차창밖으로 수목의 짙은 향이 흐르고, 어둠이 내려도 시야가 맑다. 치노는 신슈(信州, 나가노현의 옛 이름)의 오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야츠가다케와 더불어 시라카바코(白樺湖), 다테시나(蓼科) 고원, 구루야마(車山) 고원 등의 자연 명소와 융성한 산림 덕분에 휴양지로도 인기 높다. 여름에는 날씨가 청량하고, 겨울에는 눈으로 한껏 뒤덮이며,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으로 색의 향연이 열리는 것. 특히 도쿄와 나고야의 대도시권 거주자들이 주말 여행으로 많이 찾는다. 같은 나가노현의 가루이자와(軽井沢)에 이어서 일본에서 두 번째로 ‘벳소(別荘, 별장)’가 많은 이유다. 높은 수목에 둘러싸인 치노의 산기슭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터 좋은 장소에는 여지없이 별장이 즐비하다는 것을.
천혜의 자연 환경과 더불어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특유의 지산지소(地産地消) 문화가 탄탄히 뿌리내리고 있다. 현지인은 나가노의 매력으로 야사이(野菜, 채소)를 손꼽는데, 한 번 맛을 보면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옥수수, 당근, 쌀, 밀, 사과, 복숭아, 와사비와 미소 등. 일본에서 가장 맛 좋은 과일과 채소, 작물이 나가노에서 자란다. 풍경과 음식. 두 가지의 탁월한 조화가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