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사이드 남쪽의 케언곰스 국립공원(Cairngorms National Park)에 이르러서야 하일랜드를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일랜드 여행 안내서를 들춰보면 국립공원에 할애된 페이지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만큼 비중 있는 여행지는 아니지만, 스코틀랜드 전체 면적의 10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광활한 규모를 자랑한다. 국립공원 한복판을 흐르는 디강(River Dee)과 그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양 떼, 그리고 이따금씩 등장하는 마을이 목가적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국립공원과 동쪽 경계를 이루는 다이스(Dyce)에는 디사이드 글라이딩 클럽(Deeside Gliding Club)이 있다. 경비행기에 줄을 연결해 이륙을 시도하는 무동력 글라이더의 생경한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차를 잠시 정차한다. 1명만 탑승한 글라이더가 수백 미터 높이로 상승하더니 경비행기와 연결된 줄을 끊고, 상공을 가로지른다. “오늘은 바람이 좀 약한 편이에요. 기상 조건이 좋으면 무동력으로 1시간 가까이 비행을 할 수 있죠.” 아슬아슬하게 착륙을 마친 백발의 파일럿이 자신의 글라이더를 끌면서 말한다.
케언곰스 국립공원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처럼 정차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녹이 잔뜩 낀 외딴 주유소에도, 평원의 양지를 차지하고 있는 고성 앞에도, 까만 얼굴의 양 떼가 노니는 구릉 곁에도 어김 없이 차가 세워져 있다. 거친 황야와 가파른 능선을 이루는 산, 그 사이를 희미하게 파고드는 도로, 하늘을 낮게 부유하는 구름과 불시에 피어오르는 안개를 가만히 응시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하일랜드에 가장 순수하게 다가서는 방법이리라.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선사하는 가장 매혹적인 순간은 이처럼 몽환적인 광경을 앞에 두고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