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사이드는 본래 하일랜드에 속하지만, 강렬한 존재감 덕분에 별도의 지역으로 구분을 짓는다. 스코틀랜드 내 몰트위스키 증류소의 절반 가까운 50여 개가 이곳에 자리하니 그럴 만도 하다. 맥캘란, 글렌리벳, 글렌피딕 등 위스키 문외한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스타 증류소가 모두 이 일대에 모여 있다. 증류소마다 개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스페이사이드 몰트위스키의 공통점이라면 ‘절묘한 균형’이다. 달콤한 꽃과 견과류의 향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풍미는 애호가의 고른 지지를 받는다. 강렬한 피트 향을 머금은 아일레이 위스키를 선호하는 이들조차도 몰트위스키의 본산지인 스페이사이드로 향하는 일을 일종의 성지순례로 받아들인다.
굽이굽이 지류를 형성한 160킬로미터 길이의 스페이강은 위스키 증류의 가장 중요한 원료다. 강물은 스페이사이드 일대의 보리 맥아가 뒤섞여 유독 어두운 빛깔을 띈다. 여기에 스페이사이드의 너른 들판에서 자란 보리를 건조한 맥아와 효모를 첨가하고 오크통에 숙성시켜 전설적인 몰트위스키가 완성되는 것이다.
스페이사이드를 처음 찾았다면 11곳의 증류소를 안내하는 몰트위스키 트레일을 참고해도 좋다. 더프타운(Dufftown)과 아벨라워(Aberlour), 엘긴(Elgin)을 아우르는 루트에는 스페이사이드의 대표 증류소가 고루 포함되어 있다. 우선 글렌리벳 증류소를 빼놓을 수 없다. 증류소 내에 마련된 널찍한 숍에서 위스키를 골라 시음을 청해보자. “미국과 유럽의 셰리 캐스크에서 각각 다르게 숙성한 한정판 몰트위스키입니다.” 글렌리벳 매니저의 세심한 설명을 들으며 시음을 하다 보면 수백 파운드를 호가하는 한정판 위스키일수록 풍미가 복잡미묘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1865년 존 그랜트(John Grant)가 세운 이래 6대에 걸쳐 이어진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는 스코틀랜드에 얼마 남지 않은 가족 경영 방식의 증류소다. 검게 그을린 저장고 너머에는 현지인이 ‘위스키산’이라 부르는 벤 리네스(Ben Rinnes)가 굽어보고 있다. 글렌파클라스는 스페이사이드에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숙성을 기다리는 위스키 캐스크는 3,500개가 넘는다. 안내 데스크 칠판에는 연도별 위스키 리스트가 꼼꼼하게 표기되어 있다. 마침 오늘 시음실에서 내어준 위스키는 1994년산. 숙성 연도까지 따지면 왠만한 청년의 나이보다 오래된 위스키를 마시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