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우

36 Hours in Namhae
남해 36시간 여행

68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남해는 손을 덜 탄 것이 단점이자 곧 장점인 여행지다. 섬이 간직한 흥미로운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거기에 반해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 아래 나른하게 흘러간 남해에서의 지속 가능한 36시간 여행을 따라가보자.

피치바이피치
사진 박신우

Day 1

11:00

다시 한 번, 남해의 관문으로

남해각은 1970년대 우리나라 관광 산업의 태동을 상징하던 건축물 이다. 1973년 6월 하동과 남해를 잇는 남해대교가 개통하면서 남해는 섬에서 육지로 거듭났다. 길이 660미터에 이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의 등장을 반긴 것은 남해 주민뿐만이 아니었다. 개통식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인파가 10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 남해군의 인구가 13만 명이던 때다. 그후 2년 뒤 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남해각이 들어섰다.

지금은 사라진 해태그룹이 관광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북쪽에 지은 것이 임진각, 남쪽에 지은 것이 바로 남해각이다. 남해대교가 여행 명소로 떠오르 면서 숙박과 휴게 시설을 갖춘 남해각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관광 인파로 북적거렸다. 기념사진 촬영과 가이드 역할을 겸하던 사진사가 많을 때는 20명 남짓 상주했다고 한다. 1 이후 관광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남해각의 호시절은 점차 옛이야기가 되었고, 낙후된 모텔 차지였던 건물은 2018년 노량대교가 개통하면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다행히 남해각의 시간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올해 복합문화 시설로 재개관한 남해각은 남해 여행의 관문으로 두 번째 전성기를 꿈꾼다. 남해대교의 주탑을 본떠 만든 기둥을 비롯해 건물 본래의 특징은 그대로 살렸고, 카페와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등이 들어섰던 지상 1층과 지하 1층은 전시 공간으로 변신했다. 숙박 시설이던 2층은 남해를 방문한 여행자를 위한 플랫폼으로, 3층은 야외 전망대로 탈바꿈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관한 기록을 아카이빙해 선보인 상설전시는 남해 주민에게 이 두 장소가 지닌 정서적 상징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남해각의 마지막 사진사 박용길 씨의 기록이 담긴 영상부터 남해대교를 배경으로 찍은 수많은 이들의 사진, 대교 개통 소식을 다룬 신문 기사, 다리를 배경으로 촬영한 포니 자동차 지면 광고, 모텔의 객실 열쇠까지. 다양한 전시물을 둘러보는 동안 창밖으로는 붉은색 남해대교가 한 점의 작품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곳 사람들에게 남해대교는 오랫동안 남해의 대문을 상징했어요. 타지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다리를 건너면서 비로소 집에 왔다고 느끼는 거죠.” 남해각의 김향숙 해설사의 말이 이곳의 존재 이유에 힘을 보탠다. 앞으로 남해각에는 야외 무대와 라운지가 들어설 예정이고, 남해대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가 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덧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남해각

경남 남해군 설천면 남해대로 4216

14:00

여행을 추억할 책 한 권

왕복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어지간해선 2층을 넘지 않은 낮은 건물이 일렬로 나란히 늘어선 거리. 한때 지족 마을의 번화가였다지만, 지금은 고요하고 나른한 분위기만 감돈다. 시야를 가리는 가로수도 고층 건물도 없어, 남해의 따스한 햇살이 공평하게 깃드는 덕분인지 외지인에게도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현지인에겐 ‘동부대로 1876번길’이라는 새 주소 대신 ‘지족 구거리’로 더 익숙하다. 아마도 책방은 2018년 3월, 이 거리에 문을 연 독립서점이다.

책방 주인 정수진 대표는 ‘여행 이후에도 여운이 남는 곳’이 남해였다고 말한다. 그 덕(?)에 아무 연고도 없는 남해로 이주했고, 여행지에서 크고 작은 서점을 즐겨 찾던 기억을 살려 아마도 책방을 열었다. 아담한 내부를 채운 몇 개의 책장과 테이블 위에는 환경, 동물권 등 주인의 관심사와 취향이 담긴 책과 여행자를 고려한 에세이, 소설 등이 가득하다. 책 속의 인상적인 구절이나 짧은 감상평이 적힌 메모는 서점에 머무는 시간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안쪽으로 가족 단위 손님을 위한 독립된 공간이 딸려 있는 것도 독특하다. 1 이 거리의 많은 건물과 마찬가지로 도로에 가까운 전면부는 상점, 뒷쪽은 살림집으로 사용되던 구조를 살린 것이라고. 구석구석 배어 있는 운영자의 정성 어린 손길과 따뜻한 취향을 찬찬히 살펴보고 남해 여행의 여운을 더해줄 책 한 권 구입해보자.

아마도책방

경남 남해군 삼동면 동부대로 1876번길 19, 목~월요일 12~5pm

1 구거리를 걷는 동안 종종 눈에 띄는 빈 상점들도 그 너머 안쪽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16:00

섬이 자부심을 갖게 되면

삼동면 시문교차로에 이르면 마을 초입에 우직하게 자리한 네모 반듯한 건물이 눈에 띈다. 남해각이 남해대교 이후의 남해를 상징 한다면, 돌창고는 그 이전의 남해를 상징하는 건축물. 마을의 곡식과 비료 등을 저장할 목적으로 지은 공동 창고는 건축 자재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 자연석을 쪼개 하나둘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이다. 1970년대 남해대교가 개통하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돌창고는 자연스레 방치되었다. 남해 곳곳에 남아 있는 돌창고 중 시문리에 위치한 것은 1967년에 지었다.

최승용 대표가 시문 돌창고를 매입해 원형 그대로 복원한 시기가 2016년. 그렇게 시작된 돌창고 프로젝트는 신진 작가의 전시,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 문화 예술 인프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현재는 남해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아카이빙하고 재생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남해돌창고에서 전시 중인 〈보호수, 와 :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 2021〉도 그중 하나다. 남해의 각 마을에 있는 보호수 31그루를 찾아 기록하고, 전시와 출판, 지도 제작 등을 통해 그 가치를 알리고 있는 것.

전시를 관람한 뒤엔 돌창고와 마주한 애매하우스에 들르는 것이 필수 코스다. 1960년대 이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던 유휴 공간을 개조해 카페와 레지던시로 재탄생했다. 1층 카페에선 로컬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제공하는데, 그중 남해의 이파리로 만든 페스토와 남해 해모아 목장의 숙성 치즈를 올린 이파리 빵, 최승용 대표의 어머니가 하동에서 직접 만들어 보낸 미숫가루 음료가 대표 메뉴다.

남해돌창고

경남 남해군 삼동면 봉화로 538-1

20:00

전망 좋은 방

상주장은 남해에서 보기 드문 호스텔이다. 고급 호텔과 리조트 아니면 펜션과 민박. 이렇게 양극단으로 갈리는 남해의 숙소 분포 사이에서 눈에 띄는 이유다. 상주은모래비치 주변의 주택가 골목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다 보면 흰색 담벼락이 갑자기 끝나면서 상주장 마당 한가운데를 차지한 커다란 벚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일대의 여느 집처럼 민박을 제공하던 3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2019년 말 처음 문을 열었다. 건물 2층과 3층에 자리한 10개의 객실은 모두 2인실로, 철저히 ‘쉼을 위한 공간’ 에 초점을 맞춘다. 각 객실에는 욕실과 침대, 작은 테이블 겸 수납함, 냉장고가 전부. 꼭 필요한 것 외에 휴식을 방해하는 요소는 모두 없앴다. 여기에 널찍한 창에 담긴 은모래비치의 풍광이 정점을 찍는다.

마당 한쪽에 위치한 별관에는 커피 로스터리가 자리 잡고 있다. 호스텔이 군더더기를 싹 걷어내고 오롯이 휴식에 집중한 것처럼 상주장 커피 또한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드립 커피만 제공하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곳에 묵지 않더라도 본관 1층 라운지에 잠시 머물며 커피 한 잔을 즐겨보자.

상주장

경남 남해군 상주면 남해대로 697번길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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